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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을 흘리 저어
1930년대

한강을 흘리 저어

최남선 · 1930년대
사앗대 슬그머니 바로 질러 널 제마다, 삼각산(三角山) 잠긴 그림 하마 꿰어 나올 것을, 맞초아 뱃머리 돌아 헛일 만드시노나. 황금(黃金) 푼 일대장강(一帶長江) 석양(夕陽) 아래 누웠는데, 풍류(風流) 오백년(五百年)이 으스름한 모래톱을, 긴 여울 군데군데서 울어 쉬지 아녀라. 깜작여 불 뵈는 곳 게가 아니 노돌인가, 화룡(火龍)이 굼틀하며 뇌성(雷聲)조차 니옵거늘, 혼(魂)마저 편안 못 하는 육신(六臣) 생각 새뤄라. 이조(李朝) 오백년간(五百年間) 정치사상(政治史上)에 있는 가장 희곡적(戱曲的)인 장면은 더할 말 없이 단종(端宗)의 폐출(廢黜)과 및 그리로서 산출(産出)된 육신(六臣) 순의(殉義)의 장렬(壯烈)한 일막(一幕)이다. 전(全) 이조(李朝)의 다른 무엇을 다 없애더라도 이것 하나만 있으면 언제까지라도 이조사(李朝史)의 도덕적 광휘(光輝)를 드리우기에 부족이 없을 만한 것이 그네들의 정충대절(精忠大節)이니 그는 진실로 대조선(大朝鮮) 남아(男兒)의 정기의골(正氣義骨)이 이따금 소리 지르고 나서는 것의 유공(有功)한 한 가락이었다. 의(義)를 태산(泰山)으로 보고 명(命)을 홍모(鴻毛)로 여긴 결과는 육신(六臣)의 의혼(毅魂)이 노량진두(鷺梁津頭) 일조(一朝)의 이슬을 지음이었다. 그리하여 그 땅에 그대로 흙을 긁어모은 것이 시방 한강철교(漢江鐵橋) 건너서 조금 가다가 있는 노송(老松)의 일소강(一小岡)이니 그의 놀란 혼(魂)을 위존(慰尊)하는 아무 설비가 있기는 새로에 하루도 몇 십번(十番)씩 그 앞으로 버릇없는 송아지 소리를 지르면서 지나다니는 기차(汽車)의 진동(震動)이 바스러져 없으리는 마른 뼈마저 괴롭게 구는고나 하면 철교(鐵橋) 위로 우르르 지나는 그 무람없는 소리와 꼴을 듣고 볼 때마다 곧 주먹을 부르쥐고 가서 떼엎을 생각이 나지 않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런 어른의 영혼(英魂)이 인간(人間)에 있으실 리야 없겠지 하고는 노염의 붙는 불을 겨우 눌러 끈다.

주석

흘리 저어 물길을 따라 흘리듯이 노를 저어. '흘리'는 '흐르듯이'의 옛 부사형.

사앗대 삿대. 배를 밀어 나아가게 하는 긴 막대.

삼각산(三角山) 북한산의 옛 이름. 백운대·인수봉·만경대 세 봉우리에서 유래한다.

노돌 노들나루, 곧 노량진(鷺梁津). 한강 남쪽 나루로 사육신이 처형된 곳이다.

화룡(火龍) 불을 내뿜는 용. 여기서는 강 건너 깜박이는 불빛과 천둥을 빗댄 표현.

육신(六臣) 사육신(死六臣). 단종 복위를 꾀하다 순절한 성삼문·박팽년 등 여섯 충신.

단종(端宗)의 폐출(廢黜) 조선 단종이 숙부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쫓겨난 사건.

명(命)을 홍모(鴻毛)로 목숨을 기러기 털처럼 가볍게 여김. 의를 위해 죽음을 가벼이 본다는 뜻.

노량진두(鷺梁津頭) 노량진 나루터 어귀. 사육신이 처형되어 묻힌 곳.

심상·해설

석양에 황금빛으로 누운 한강을 흘리 저으며, 삼각산 그림자가 어리는 모래톱 너머 노들나루의 불빛에서 편히 잠들지 못하는 사육신의 충혼을 떠올리는 비장한 정경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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