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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
1930년대

춘향

김영랑 · 1930년대
큰 칼 쓰고 옥(獄)에 든 춘향(春香)이는 제 마음이 그리도 독했던가 놀래었다 성문이 부서져도 이 악물고 사또를 노려보던 교만한 눈 그는 옛날 성학사(成學士) 박팽년(朴彭年)이 불 지짐에도 태연(泰然)하였음을 알았었니라 오! 일편단심(一片丹心) 원통코 독한 마음 잠과 꿈을 이뤘으랴 옥방(獄房) 첫날밤은 길고도 무서워라 설움이 사무치고 지쳐 쓰러지면 남강(南江)의 외론 혼(魂)은 불리어 나왔느니 논개(論介)! 어린 춘향(春香)을 꼭 안아 밤새워 마음과 살을 어루만지다 오! 일편단심(一片丹心) 사랑이 무엇이기 정절(貞節)이 무엇이기 그 때문에 꽃의 춘향(春香) 그만 옥사(獄死)하단 말가 지네 구렁이 같은 변학도(卞學徒)의 흉칙한 얼굴에 까무러쳐도 어린 가슴 달큼히 지켜주는 도련님 생각 오! 일편단심(一片丹心) 상하고 멍든 자리 마디마디 문지르며 눈물은 타고 남은 간을 적셔 내렸다 버들잎이 창살에 선뜻 스치는 날도 도련님 말방울 소리는 아니 들렸다 삼경(三更)을 새우다가 그는 고만 단장(斷腸)하다 두견이 울어 두견이 울어 남원(南原) 고을도 깨어지고 오! 일편단심(一片丹心) 깊은 겨울밤 비바람은 우루루루 피칠해 논 옥창(獄窓)살을 들이치는데 옥 죽엄한 원귀(寃鬼)들이 구석구석에 휙휙 울어 청절(淸節) 춘향(春香)도 혼(魂)을 잃고 몸을 버려 버렸다 밤새도록 까무러치고 해 돋을녘 깨어나다 오! 일편단심(一片丹心) 믿고 바라고 눈앞으로 보고 싶던 도련님이 죽기 전(前)에 와 주셨다 춘향(春香)은 살았구나 쑥대머리 귀신 얼굴 된 춘향(春香)이 보고 이(李) 도령은 잔인(殘忍)스레 웃었다 저 때문의 정절(貞節)이 자랑스러워 「우리집이 팍 망(亡)해서 상거지가 되었지야」 틀림없는 도련님 춘향(春香)은 원망도 않았니라 오! 일편단심(一片丹心) 모진 춘향(春香)이 그 밤 새벽에 또 까무러쳐서는 영 다시 깨어나진 못했었다 두견은 울었건만 도련님 다시 뵈어 한(恨)을 풀었으나 살아날 가망은 아주 끊기고 왼몸 푸른 맥(脈)도 홱 풀려 버렸을 법 출도(出道) 끝에 어사(御史)는 춘향(春香)의 몸을 거두며 울다 「내 변가(卞哥)보다 잔인무지(殘忍無智)하여 춘향(春香)을 죽였구나」 오! 일편단심(一片丹心)

주석

성학사(成學士) 박팽년(朴彭年) 조선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팽년(1417~1456). 세조의 단종 폐위에 맞서 절의를 지키다 모진 고문(불 지짐) 끝에 죽었다. 변치 않는 충절의 상징으로 인용되었다.

논개(論介) 임진왜란 때 진주성이 함락되자 촉석루에서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몸을 던져 순국한 의기(義妓). '남강의 외론 혼'이 곧 논개다.

남강(南江) 경상남도 진주를 흐르는 강. 논개가 왜장을 안고 투신한 곳.

일편단심(一片丹心) 한 조각 붉은 마음. 변치 않는 진정과 충절·절개를 뜻하는 말로, 각 연의 후렴으로 쓰였다.

변학도(卞學徒) 「춘향전」에서 춘향에게 수청을 강요하며 핍박하는 탐관오리 신임 사또.

삼경(三更) 하룻밤을 다섯으로 나눈 셋째 부분으로, 밤 11시에서 새벽 1시 사이의 한밤중.

단장(斷腸) 창자가 끊어진다는 뜻으로, 견딜 수 없을 만큼 슬픔이 사무침을 이르는 말.

출도(出道) 암행어사가 신분을 밝히고 부정한 관리를 처단하는 '어사출도(御史出道)'를 이른다.

쑥대머리 옥살이로 마구 헝클어진 머리. 판소리 「춘향가」의 유명한 대목 이름이기도 하다.

심상·해설

큰 칼을 쓰고 옥에 갇혀 사또를 노려보는 춘향, 두견이 울고 비바람이 옥창살을 치는 깊은 밤, 일편단심으로 죽어 가는 그 처절한 절개의 비극이 가슴 저미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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