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북한산성
기일(其一)
산(山)마다 성(城) 있으되
지킨 성(城)이 몇 곳인가
이 인력(人力) 이 물자(物資)를
이리 낭비(浪費)한다 하고
성(城)가퀴 한번 돌면서
열번 한숨 쉬거라.
기이(其二)
동장대(東將臺) 그 큰 집도
쑥대밭이 되단 말가
구름이 알로 돌고
바다 멀리 탁 터져서
재동(才童)의 당년(當年) 글귀만
그때 그냥 이오녀.
기삼(其三)
태고암(太古庵) 쇠북 소리
언제부터 귀먹은고
행궁(行宮)터 감나무밭
불구슬이 조롱조롱
세월(歲月)은 산중(山中)에서도
큰 발자국 내도다.
주석
북한산성 서울 북한산에 쌓은 조선의 산성. 도성 방어를 위해 숙종 때 대대적으로 축조하였다.
성가퀴 성 위에 낮게 쌓아 몸을 숨기고 적을 막거나 쏘게 만든 담. 여장(女牆).
동장대(東將臺) 북한산성 동쪽의 지휘대. 장수가 군사를 지휘하던 누각.
재동(才童)의 당년(當年) 글귀 어린 시절 재주 있던 아이가 지은 글귀. 인공 건물은 무너져도 옛 글만은 남아 있음을 대비한다.
이오녀 '이로구나·있구나'에 해당하는 옛 종결형.
태고암(太古庵) 북한산성 안의 절(태고사). 고려 말 보우(普愚) 태고화상과 관련된 사찰이다.
행궁(行宮) 임금이 거둥할 때 머물던 임시 궁궐. 북한산성에도 유사시를 대비한 행궁이 있었다.
심상·해설
막대한 인력으로 쌓고도 지켜내지 못한 북한산성을 세 수로 돌아본다. 쑥대밭이 된 누각과 행궁터 감나무의 붉은 감을 보며, 산중에도 어김없이 큰 발자국을 내는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