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금강에 떠서
돛인가 구름인가 하늘 끝에 희끗한 것,
오는지 가시는지 꿈속처럼 뭉기댈 제,
생각이 그것을 따라 가물아득 하여라.
석탄(石灘)을 뵈옵고서 이정언(李正言)을 아노매라,
뇌정(雷霆)은 휘뿌려도 풍월(風月)에는 종이심을,
나 혼자 웃고 지난다 허물 너무 마소서.
공주(公州)로서 금강(錦江)에 떠서 부여(夫餘)로 내려가노라면 십리(十里) 좀 더 못 미쳐서 석탄(石灘)을 지나니 여지승람(輿地勝覽)에 이러한 주기(注記)가 있다.
(주기는 고려 정언 이존오가 신돈을 탄핵하다 좌천되어 이 여울가에 정자를 짓고 풍월로 여생을 보냈다는 사연과, 그가 지은 한시 한 편을 싣고 있다.)
백리(百里) 긴 언덕에 초록장(帳)이 왜버들을,
다락배 천만 척(千萬隻)은 사라져라 꿈이건만,
물에 뜬 저 그림자가 돛대 긘 듯 하여라.
주석
석탄(石灘) 충청남도 공주와 부여 사이 금강에 있는 여울 이름. 고려 충신 이존오가 만년에 은거한 곳이다.
이정언(李正言) 고려 말 문신 이존오(李存吾). 정언(正言) 벼슬에 있을 때 요승 신돈(辛旽)을 탄핵하다 좌천되었고, 석탄에 정자를 짓고 풍월로 여생을 보냈다.
뇌정(雷霆)은 휘뿌려도 풍월(風月)에는 종이심을 벼락(권력의 횡포)에는 굽히지 않던 이존오가 자연(풍월) 앞에서는 기꺼이 종이 되어 풍류로 살았음을 기린 구절.
여지승람(輿地勝覽) 조선 전기의 전국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원문의 '오지승람(奧地勝覽)'은 같은 책을 가리킨다.
다락배 다락(누각)처럼 높게 지은 큰 배. 백제 시절 금강을 메웠을 화려한 배들을 가리킨다.
심상·해설
공주에서 부여로 금강을 따라 내려가며, 석탄 여울에 깃든 고려 충신의 절개를 기리고 백제의 화려하던 배들이 다 사라진 자리에 물 위 그림자만 어리는, 흥망의 무상함을 관조하는 뱃길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