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가장 비통한 기욕
아, 가도다, 가도다, 쫓겨가도다.
잊음 속에 있는 간도(間島)와 요동(遼東)벌로
주린 목숨 움켜쥐고, 쫓겨가도다
진흙을 밥으로, 햇채를 마셔도
마구나, 가졌다면, 단잠은 얽맬 것을-
사람을 만든 신(神)아, 하루 일찍
차라리 주린 목숨 빼앗아 가거라!
아, 사노라 사노라, 취해 사노라
자폭(自暴) 속에 있는 서울과 시골로
멍든 목숨 행여, 갈까, 취해 사노라
어둔 밤 말없는 돌을 안고서
피울음을 울더면, 설움은 풀릴 것을-
사람을 만든 신(神)아, 하루 일찍
차라리 취한 목숨, 죽여 버리라!
-『빼앗긴 혼(魂)』 가운데서-
주석
기욕(祈慾) 간절히 바라는 욕망·기원. 비통한 심정으로 차라리 죽음을 비는 역설적 소망을 가리킨다.
간도(間島) 두만강 북쪽의 만주 지역. 일제강점기에 많은 조선인이 이주·유랑하던 곳이다.
요동(遼東)벌 중국 랴오둥 지방의 너른 들. 간도와 함께 유민들이 향하던 만주 일대를 가리킨다.
햇채 흙탕물 또는 도랑·시궁창의 더러운 물을 이르는 말로 풀이된다.
검 신(神)을 뜻하는 옛말. '사람을 만든 검'은 인간을 지은 조물주를 부르는 표현이다.
자폭(自暴) 자포자기,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함부로 내버려 둠.
빼앗긴 혼(魂) 이 시가 수록된 연작·시집의 제목으로, 식민지 현실에 짓밟힌 민족혼을 함의한다.
심상·해설
주린 목숨을 움켜쥐고 간도와 요동 벌판으로 쫓겨 가거나, 자포자기 속에 술에 취해 멍든 삶을 견디며 차라리 죽음을 비는, 나라 잃은 백성의 비통한 절규가 사무치게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