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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서
1930년대

떠나서

최남선 · 1930년대
님께야 찾아보아 못 얻을 것 없건마는, 내게야 뒤지기로 그 무엇이 나오리까, 그대로 거두시기야 바란다나 하리까. 제 맘도 제 뜻대로 아니됨을 생각하면, 억지로 못하시는 님을 어이 탓하리만, 알면서 나는 짜증은 더 못 눌러 하노라. 쌓이고 쌓인 말을 벼르고 또 벼르다가, 만나면 삭막하여 멀건하니 있을 망정, 뒤어서 못 뵈는 뜻을 님은 알까 합네다. 찡기고 웃으심이 낱낱이 매운 채를, 살점이 묻어나며 달기는 어인 일고, 안 맞아 못 살 매니 으서진다 마다랴. 님의 낯 실주름에 닻줄만치 애가 키고, 님의 눈 야흐림에 소나긴 듯 가슴 덜렁, 가다가 되돌아 듦을 과히 허물 마소서. 안 속는 님 속이려 제가 혼자 속아 왔네, 님 아니 속으심을 열 번 옳게 알면서도, 속을 듯 안 속으심에 짜증 몹시 나괘라. 물 들고 따랐도다 술 들여야 하올 님을, 맨이로 덤볐도다 어려서도 못될 일을, 받을 듯 모른 체 하심 야속달 길 없어라. 열 번 옳으신 님 눈물 지어 느끼면도, 돌리다 못 돌리는 이 발길을 멈추고서, 저녁 해 엷은 빛 아래 눈 꽉 감고 섰소라. 봄이 또 왔다 한다 오시기는 온 양하나, 동산에 피인 꽃이 언 가슴을 못 푸나니, 님 떠나 외론 적이면 겨울인가 하노라.

주석

님 사모하는 대상이자, 시인이 평생 우러른 절대적 존재(구도·신앙의 대상)로도 읽히는 상징적 '님'.

매운 채 매운 채찍. 호된 꾸지람이나 시련을 비유한다.

야흐림 약간 흐림. 눈빛이 흐릿해진 모양.

맨이로 '맨손으로·맨몸으로'의 옛말. 아무 준비 없이의 뜻.

느끼면도 '흐느끼면서도'에서 온 말로, 울먹이면서도의 뜻.

나괘라 '나는구나'에 해당하는 옛 감탄형 종결.

심상·해설

님께 다가갔다 번번이 물러서며 짜증과 사모 사이를 오가는 마음을 아홉 수로 풀어낸다. 저녁 해 아래 눈 감고 선 발길, 봄이 와도 풀리지 않는 언 가슴이 애절하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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