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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 삼묘에서
1930년대

강서 삼묘에서

최남선 · 1930년대
평남(平南) 강서군(江西郡)의 서방(西方) 약(約) 십리허평야(十里許平野)의 중(中)에 고구려시대(高句麗時代)의 고분(古墳) 삼묘(三墓)가 정립(鼎立)하여 있고 그 양자(兩者)의 중(中)에서 고구려(高句麗) 하엽(下葉)의 정련(精練)한 기술(技術)을 대표(代表)할 훌륭한 벽화(壁畵)가 발견(發見)되니 대개 일천사백년(一千四百年) 전(前) 경(頃)의 작(作)으로 추정(推定)되는 것이오 이 근처(近處)에 있는 다른 몇 군데 고분벽화(古墳壁畵)와 한 가지 현존(現存) 동양(東洋) 최고(最古) 회화(繪畵)의 중요(重要)한 일품(一品)이라 하는 것이라. 흙 속에 깊이 들 제 울며 섧다 했을렷다, 드러나 빛나던 것 다 사라져 없는 날에, 버린 듯 파묻은 너만 남아 홀로 있구나. 예술(藝術)의 대궐 안에 너라 있어 발이 되어, 거룩한 우리 솥을 세계(世界) 위에 괴었나니, 남아야 아무것 없다 구차할 줄 있으랴. 두 눈을 내리깔고 엄숙하게 섰노라니, 금마다 소리 있어 우레같이 어울리매, 몸 아니 떨리시는가 넋도 녹아 가도다.

주석

강서 삼묘(江西三墓) 평안남도 강서군에 있는 고구려 후기의 세 고분(강서대묘·중묘·소묘). 사신도 등 빼어난 벽화로 유명하다.

정립(鼎立) 솥의 세 발처럼 셋이 벌여 마주 섬.

하엽(下葉) 어떤 시대의 후기·말엽. 여기서는 고구려 후기를 뜻한다.

거룩한 우리 솥을 세계 위에 괴었나니 고구려 벽화가 주춧돌(발)이 되어 우리 민족의 예술(솥)을 세계적 수준으로 떠받쳤다는 비유. 고대 정(鼎, 솥)은 나라·권위의 상징이다.

심상·해설

들판에 솥발처럼 선 고구려 옛 무덤 속, 천사백 년 어둠을 견디며 홀로 남아 빛나는 벽화 앞에서 시인이 그 찬란한 금빛에 넋을 잃고 민족 예술의 자긍에 몸을 떠는 엄숙한 장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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