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계월향에게
계월향(桂月香)이여 그대는 아리땁고 무서운 최후(最後)의 미소(微笑)를 거두지 아니한 채로 대지(大地)의 침대(寢臺)에 잠들었습니다
나는 그대의 다정(多情)을 슬퍼하고 그대의 무정(無情)을 사랑합니다
대동강(大洞江)에 낚시질하는 사람은 그대의 노래를 듣고 모란봉(牧丹峰)에 밤놀이하는 사람은 그대의 얼굴을 봅니다
아이들은 그대의 산 이름을 외우고 시인(詩人)은 그대의 죽은 그림자를 노래합니다
사람은 반드시 다하지 못한 한(恨)을 끼치고 가게 되는 것이다
그대는 남은 한(恨)이 있는가 없는가 있다면 그 한(恨)은 무엇인가
그대는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대의 붉은 한(恨)은 현란(絢爛)한 저녁놀이 되어서 하늘길을 가로막고 황량(荒凉)한 떨어지는 날을 돌이키고자 합니다
그대의 푸른 근심은 드리고 드린 버들실이 되어서 꽃다운 무리를 뒤에 두고 운명(運命)의 길을 떠나는 저문 봄을 잡아매려 합니다
나는 황금(黃金)의 소반에 아침볕을 받치고 매화(梅花) 가지에 새봄을 걸어서 그대의 잠자는 곁에 가만히 놓아드리겠습니다
자 그러면 빠르면 하룻밤 더디면 한겨울 사랑하는 계월향(桂月香)이여
주석
계월향(桂月香) 조선 선조 때 평양의 의기(義妓). 임진왜란 때 적장을 김응서에게 인도하여 처단하게 하고 자신은 죽었다고 전한다.
대동강(大洞江)·모란봉(牧丹峰) 평양을 가로지르는 강과 그 북쪽의 명승 봉우리. 계월향의 자취가 서린 곳.
소반 자그마한 밥상.
심상·해설
마지막 미소를 머금은 채 대지에 잠든 의기 계월향을 향해, 저녁놀 같은 붉은 한과 버들실 같은 근심을 헤아리며 매화 가지에 새봄을 걸어 바치려는 추모의 정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