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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봉에서
1930년대

비로봉에서

최남선 · 1930년대
하느님 석가산(石假山)이 어이 여기 와 있는고, 귀여운 큰아드님 무엇으로 고일까 해, 차마도 아까운 이것 물려주심이니라. 동해(東海)의 잔물결이 헤어보면 얼말런지, 만이천봉(萬二千峰) 저마다의 만이천(萬二千)씩 신기로움, 만이천(萬二千) 서로 얽힌 수(數) 겨눠본다 하리오. 우연히 돌 한 덩이 내어던져 두신 것이, 시킨 적 한 적 없이 되어도 저리되니, 짓자지 않는 조화가 더욱 놀랍하외다.

주석

비로봉(毘盧峰) 금강산의 최고봉. '비로'는 진리의 본체인 비로자나불에서 온 이름이다.

석가산(石假山) 정원 등에 돌을 쌓아 만든 인공의 산. 여기서는 금강산을 하느님이 빚어 놓은 석가산에 빗댄다.

큰아드님 맏아들. 여기서는 하느님이 가장 아끼는 존재, 곧 이 땅·민족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힌다.

고일까 '고이다(받들어 모시다)'에서 온 말로, 무엇으로 받들고 대접할까의 뜻.

만이천봉(萬二千峰) 금강산의 봉우리를 일컫는 관용 표현. 일만 이천 봉이라 하여 그 빼어난 절경을 이른다.

짓자지 '짓다(억지로 만들다)'에서 온 말로, 일부러 꾸며 만들지 않음을 이른다. 무위(無爲)의 조화를 뜻한다.

놀랍하외다 '놀랍사외다' 곧 놀랍습니다에 해당하는 옛 높임 종결형.

심상·해설

금강산 비로봉에 올라 만이천 봉을 하느님이 맏아들에게 물려준 보물로 우러른다. 동해의 잔물결처럼 헤아릴 수 없는 신기로움과, 억지 없이 절로 이루어진 조화 앞에 경탄이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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