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압록강에서
압록강(鴨綠江)은 고조선(古朝鮮)에 있어서는 도리어 남방(南方)에 치우치는 내정(內庭)의 일수(一水)이었다. 이것이 아주 북경(北境)을 짓게 된 때로부터 조선인(朝鮮人)이 반도(半島)라는 자루 속에서 웅크리고 숨도 크게 쉬지 못하다가 최영(崔瑩)으로 인하여 오래간만에 요수(遼水) 저편의 넓은 뜰에 하마 활개를 다시 칠까 하였더니 이태조(李太祖)가 위화도(威化島)까지 와서 딴 뜻을 두고 회군(回軍)하는 통에 모처럼의 기회도 수포(水泡)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 강을 건너 질러놓은 대철교(大鐵橋)는 어찌 보면 떨어졌던 옛 땅을 거멀못으로 찍어 당긴 것 같기도 하지마는 이 물 한 줄기를 경계로 하여 이 둑에는 하얀 사람이 다니고 저 둑에는 퍼런 사람이 우물우물함은 재미있는 대조 그 속에 퍽 느꺼운 것이 있다. 고구려(高句麗) 고어(古語)에 구토회복(舊土恢復)을 ‘다물(多勿)’이라 한다 함이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적혔다.
말 씻겨 먹이던 물 풀빛 잠겨 그득한데,
위화(威化) 섬 밖에 떼 노래만 높은지고,
맞초아 궂은비 오니 눈물 겨워 하노라.
안뜰의 실개천이 언제부터 살피 되어,
흰옷 푸른 옷이 편갈리어 비최는고,
쇠다리 거멀 아니면 ‘다물’ 볼 줄 있으랴.
굽은 솔 한 가지가 저녁 물에 비최이니,
추모(鄒牟)님 활등인 듯 도통(都統) 어른 채찍인 듯,
꿈 찾아 다니는 손이 놓을 줄을 몰라라.
주석
내정(內庭) 집 안의 안뜰. 압록강이 고조선에는 변경이 아니라 안쪽의 강이었음을 비유한다.
최영(崔瑩) 고려 말의 명장. 요동 정벌을 추진하여 옛 땅 회복을 꾀했다.
위화도(威化島) 압록강 하류의 섬. 1388년 이성계가 요동 정벌 도중 이곳에서 회군하여 옛 땅 회복이 무산되었다.
다물(多勿) 고구려 옛말로 '잃었던 옛 땅을 되찾음'을 뜻한다.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살피 두 지역을 가르는 경계. 여기서는 국경을 이른다.
거멀 거멀못. 두 물건을 이어 붙이는 'ㄷ'자 모양의 쇠못. 압록강 철교를 비유한다.
추모(鄒牟)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 주몽의 다른 이름.
도통(都統) 군대를 총지휘하던 으뜸 장수. 여기서는 최영 등 옛 명장을 가리킨다.
심상·해설
궂은비 내리는 압록강 가, 흰옷과 푸른 옷이 강 하나를 두고 갈린 풍경 속에서 저녁 물에 비친 굽은 솔가지를 옛 영웅의 활등으로 보며 잃어버린 옛 땅을 그리는 비감이 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