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사계의 노래
고운 생각 가득한 나물광주리를 옆에 끼고
인생의 첫 이슬에 발을 적시는 봄철의 따님이여,
꽃을 피우려는 고운 바람에, 그대의 보드라운
가슴의 사랑의 꽃봉우리는 지금 떨고 있어라.
미칠 듯한 열락에 몸과 맘을 다 잊고 뛰노는
황혼의 때아닌 졸음을 그리워하는 여름의 맘이여,
행복의 명정(酩酊), 음울(陰鬱)의 생각은 지금 그대를 둘러싸고
끝없는 꿈으로 피곤한 ‘인생(人生)’을 곱게 하여라.
빛깔 없게도 고개를 숙이고, 묵상(黙想)에 고요한 가을이여,
냉락(冷落)을 소곤거리는 낙엽의 비 노랫가락은
들을 거쳐, 넓다란 맘의 세계에도 빗겨들어,
곳곳마다 ‘죽은 맘’의 장사(葬事)에 한갓 분주하여라.
흰 옷을 입고, 고요히 누웠는 겨울의 베니스 여신이여,
건독(乾毒)만 남고, 눈물 흔적조차 없는 너의 눈가에는
아무리 잃어버린 애인을 그립게 찾는 비를 띠었어도
쓸 데조차 없어라, 한때인 사랑은 올 길이 없어라.
주석
명정(酩酊) 술에 몹시 취함. 여기서는 행복에 흠뻑 도취된 여름의 상태를 비유한다.
냉락(冷落) 쓸쓸하고 적막함. 낙엽 지는 가을의 황량한 정취를 가리킨다.
베니스 여신 흔히 미와 사랑의 여신 비너스(Venus)를 가리키나, 본문에서는 이를 차갑고 메마른 겨울에 빗대어 사랑이 식어 버린 모습으로 형상화했다.
건독(乾毒) 물기 없이 메마른 독기. 눈물조차 말라 버린 차고 황량한 마음의 상태를 뜻한다.
심상·해설
봄의 설렘, 여름의 도취, 가을의 적막, 겨울의 메마름으로 이어지는 사계절을 여성의 모습에 빗대어, 피어났다 식어 가는 사랑과 인생의 덧없음이 사색적으로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