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가늘한 내음
내 가슴 속에 가늘한 내음
애끈히 떠도는 내음
저녁해 고요히 지는 제
먼 산 허리에 슬리는 보랏빛
오! 그 수심 뜬 보랏빛
내가 잃은 마음의 그림자
한 이틀 정렬에 뚝뚝 떨어진 모란의
깃든 향취가 이 가슴 놓고 갔을 줄이야
얼결에 여읜 봄 흐르는 마음
헛되이 찾으려 허덕이는 날
뻘 위에 철―석 갯물이 놓이듯
얼컥 이―는 후끈한 내음
아! 후끈한 내음 내키다 마―는
서어한 가슴에 그늘이 도―나니
수심 뜨고 애끈하고 고요하기
산 허리에 슬리는 저녁 보랏빛
주석
내음 냄새·향기를 뜻하는 시적·방언적 표현. 김영랑이 즐겨 쓴 부드러운 어감의 말이다.
수심 뜬 근심·시름이 어린. '수심(愁心)'은 마음에 깃든 시름을 뜻한다.
정렬 정열(情熱)의 옛 표기. 모란이 한 이틀 뜨겁게 피었다 짐을 가리킨다.
서어한 서먹하고 어설픈, 또는 마음이 헛헛하고 설핀 상태를 이르는 말.
심상·해설
저녁 해 질 무렵 먼 산허리에 어리는 보랏빛과, 떨어진 모란이 남긴 후끈한 향기가 가슴에 번지며 잃어버린 봄과 마음을 향한 애틋한 시름이 고요히 감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