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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을 차고
1930년대

독을 차고

김영랑 · 1930년대
내 가슴에 독(毒)을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害)한일 없는 새로 뽑은독(毒) 벗은 그무서운 독(毒) 그만 흩어버리라 한다 나는 그독(毒)이 선뜻 벗도 해(害)할지 모른다 위협하고 독(毒) 안차고 살어도 머지않어 너 나 마주 가버리면 억만세대(億萬世代)가 그 뒤로 잠잣고 흘러가고 나종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것임을 「허무(虛無)한듸!」 독(毒)은 차서 무엇 하느냐고? 아!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 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虛無)한듸!」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마음을 노리매 내 산체 짐승의 밥이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네맛긴 신세임을 나는 독(毒)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마금날 내 외로운 혼(魂) 건지기 위하여

주석

독(毒)을 차다 마음속에 독한 결의와 의지를 품는다는 비유. 불의한 현실에 맞서는 결연한 자세를 상징함.

억만세대(億萬世代)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세월과 세대.

이리 승냥이 이리와 승냥이. 시인을 위협하는 사나운 무리, 곧 불의한 현실의 세력을 비유함.

마금날 '마지막 날'의 옛 표기.

혼(魂) 넋, 영혼.

심상·해설

허무를 내세워 단념을 권하는 세상에 맞서, 사나운 이리·승냥이 같은 현실 앞에서도 가슴에 독을 품고 외로운 혼을 지키려는 결연하고 비장한 의지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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