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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
1930년대

망각

김영랑 · 1930년대
걸든거름 멈추고서서도 얼컥 생각키는것 죽엄이로다 그죽엄이사 서룬살적에 벌서 다 이저버리고 사라왔는듸 웬노릇인지 요즘 작고 그죽엄 바로닥처온듯만 싶어져 항용 주춤서서 행길을 호기로히 달리는 행상(行喪)을 보랐고있느니 내 가버린뒤도 세월이야 그대로 흐르고 흘러가면 그뿐이오라 나를 안어길으든 산천(山川)도 만년(萬年)한양 그모습 아름다워라 영영 가버린 날과 이세상 아무 가겔것 없으매 다시 찾고 부를인들 있으랴 억만영겁(億萬永劫)이 아득할뿐 산천(山川)이 아름다워도 노래가 고았드레도 사랑과예술이 쓰고달끔하여도 그저 허무한노릇이여라 모든 산다는것 다 허무하오라 짧은 그동안이 행복했든들 참다웠든들 무어 얼마나 다를나드냐 다 마찬가지 아니남만 나흘러냐? 다 허무하오라 그날 빛나든 두눈 딱감기어 명상(暝想)한대도 눈물은 흐르고 허덕이다 숨다지면 가는거지야 더구나 총칼사이 허매다 죽는 태어난 비운(悲運)의 겨레이어든 죽엄이 무서웁다 새삼스레 뉘 비겁(卑怯)할소냐 만은 비겁(卑怯)할소냐 만은 죽는다―고만이라―이 허망한 생각 내마음을 웨 꼭붙잡고 노칠안느냐 망각(忘却)하자―해본다 지난날을 아니라 닥쳐오는 내죽엄을 아! 죽엄도 망각(忘却)할수있는 것이라면 허나 어디 죽엄이사 망각(忘却)해질수 있는것이냐 길고먼 세기(世紀)는 그죽엄 다 망각(忘却)하였지만

주석

행상(行喪) 상여를 메고 나가는 행렬. 곧 장례 행렬, 상여.

억만영겁(億萬永劫) 헤아릴 수 없이 길고 영원한 시간.

비운(悲運)의 겨레 총칼 사이에서 죽어 가는 슬픈 운명의 민족. 일제강점기 식민지 백성의 현실을 가리킴.

망각(忘却) 잊어버림.

심상·해설

길을 걷다 상여를 보며 문득 닥쳐올 죽음을 떠올리고, 아름다운 산천도 사랑도 예술도 끝내 허무하다는 생각에 잠겨, 죽음만은 잊을 수 없다는 깊은 무상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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