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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1930년대

집

김영랑 · 1930년대
내 집 아니라 네 집이라 날아라 얼른 돌아오라 처마 난간(欄干)이 너희들 가여운 소색임을 지음(知音)터라 내 집 아니라 네 집이라 아비 간뒤 머언날 아들 손자 잠도 깨우리 문틈 사이 너는 몇代 서러워 우느뇨 내 집 아니라 네 집이라 하늘 날 흐르던 은행잎(銀杏-)이 좁은 마루구석에 품인듯 안겨든다 태고(太古)로 맑은 바람이 거기 살았느니라 오! 내 집이라 열해요 스무해를 앉았다 누웠달뿐 문밖에 바쁜 손이 길 잘못 들어 날 찾아오고 손때 살내음도 절었을 난간(欄干)이 흔히 나를 안고 한가하다 한두쪽 흰구름이 사라지는듸 한두엇 저질러논 부끄러운 짓 파아란 하늘처럼 아슨풀하다

주석

지음(知音) 소리를 알아듣는다는 뜻. 본래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의 고사에서 나온 말로 마음을 깊이 알아주는 벗을 이르나, 여기서는 처마 난간이 새들의 속삭임을 알아듣는다는 뜻으로 쓰였다.

소색임 '속삭임'의 방언형.

태고(太古) 아득한 옛날. 까마득한 상고 시대.

손 손님, 나그네. 여기서는 길을 잘못 든 나그네를 가리킨다.

아슨풀하다 '아슴푸레하다'의 옛말. 또렷하지 않고 희미함.

심상·해설

처마 난간과 마루 구석에 안겨드는 은행잎, 태고의 맑은 바람이 깃든 옛집에서 스무 해를 보내며 부끄러운 지난날을 파란 하늘처럼 아련히 돌아보는 정취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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