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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사
1920년대

권두사

김억 · 1920년대
하이얀 구름이 저 넓은 하늘을 뭉게뭉게 돌다가 아무 자취도 없이 스러지는 여름철에는 무엇보다도 한시책(漢詩冊) 같은 것을 구(求)해 놓고 마음대로 이 장 저 장 들추면서 만독(慢讀)하는 것이 나의 다시없는 낙(樂)이외다. 우연(偶然)한 기회(機會)라 할지, 어찌어찌하여 조선여류시인(朝鮮女流詩人)들의 유주(遺珠)를 대(對)케 되었는데, 이것이 결국(結局)은 이 역시집(譯詩集) 「꽃다발」을 만들 동기(動機)가 되었으니 생각사록 뜻하지 아니한 곳에 낙(樂)으로서의 결과(結果)는 자못 컸다 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읽어가다가 재미가 있고 마음에 드는 시(詩)면 하나도 빠뜨리지 아니하고 공책(空冊)에다가 적어두고는 하였습니다. 나딴은 한때의 낙(樂)일망정 잊지 아니하고서 두고두고 기억(記憶)을 새롭힐 경륜(經綸)에서외다. 하나 둘 적어 놓은 것이 어느덧 한 오십편(五十篇)가량 되었을 때, 이 인생(人生)의 욕심(慾心)이란 한정(限定)이 없달까, 이왕이면 수사(修辭)공부 겸(兼) 소견(消遣)거리로 번역이나 하는 생각으로 틈틈이 시역(試譯)을 해보았습니다. 티끌 모아 태산(泰山)으로 이것도 어느덧 그 수(數)가 적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잡지(雜誌) 저 신문(新聞)에서 간혹 시(詩)랍시고 글 같은 것을 청(請)할 때에, 비록 답지는 못할망정, 뻔뻔스러이 재고품(在庫品)이라 할 이 역시(譯詩)들을 제공(提供)하였으니 혼자의 즐기자던 낙(樂)은 어디로 가고 결국(結局)은 매문(賣文)의 본성(本性)을 그대로 나타낸 셈이외다. 또 그리고 이래저래 그것들이 한 이백편(二百篇) 가까이 모였을 때, 나는 또다시 이왕이면 출판(出版)까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이 소위(所謂) 꿩 먹고 알 먹자는 수작도 되거니와 그보다도 나는 다른 의미(意味)로 내 자신(自身)의 미욱스러운 골독에 놀랐다기보다도 혼자로서의 낙(樂)이 이렇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만일 변변치는 못하나마 다른 일에다 이만한 노력(努力)과 정성(精誠)을 다하였더란들, 이런 어렵고도 효과(效果)가 적은 역시집(譯詩集)보다는 훨씬 더 의미(意味)있는 무엇이 있었을상하기 때문이외다. 이 원인(原因)에 이 결과(結果)라는 말도 있거니와,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이 「꽃다발」은 결국(結局) 비빔밥밖에 더 될 것이 없습니다. 어디까지 만독(慢讀)으로의 부산품(副産品)에 지나지 아니하는 것만치, 연대순(年代順)을 밟은 진정(眞正)한 사화집(詞華集)은 아니외다. 이러하여 이 역시집(譯詩集)에는 연대순(年代順)이니 인물본위(人物本位)니 하는 것들을 전부(全部) 무시(無視)해 버리고 역시(譯詩)의 편수(篇數)를 따라 차례를 정(定)코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맨 위로 가야할 것이 맨 끝으로도 가고 중간(中間)쯤 있어야 할 것이 맨 처음으로 가든가 맨 끝으로도 가서 그야말로 뒤죽박죽이외다. 이 역자(譯者)가 지지 않을 수 없는 책임(責任)이외다. 그런데 변명이 아니라 사실(事實)이 정규(正規)로의 사화집(詞華集)이 아닌 이상(以上) 무슨 필요(必要)로 귀찮고 알 수도 없는 연대(年代)들을 따지느니 인물(人物)로의 작자(作者)의 내력(來歷)같은 것을 들추느니 하면서 야단법석할 것입니까. 그것은 문학사가(文學史家)의 독학자(篤學者)님들이 하실 일이요, 나와 같은 만독자(慢讀者)의 일개(一個) 과객(過客)의 알 바가 아니외다. 시(詩)를 좀더 자세히 이해(理解)함에는 그 시대(時代)라든가 작자(作者)의 인물(人物)이라든가 하는 것을 먼저 알아두는 것이 편의(便宜)치 않은 것은 아니외다. 그러나 그것은 연구자(硏究者)로의 취(取)할 태도(態度)요 시(詩)만을 보고서 즐기자는 과객(過客)에게는 그다지 필요(必要)한 일이 아니외다. 역자(譯者)는 귀찮은 이 모든 것들을 일부러 피(避)했노라고 하면 흥 하고 비웃을 이도 계시려니와 정직(正直)한 고백(告白)이 사실(事實) 그랬노라고 다시 한마디 변명을 하여둡니다. × 공부자(孔夫子)께서는 시(詩)를 「사무사(思無邪)」라고 평(評)을 하셨거니와, 이 여류시인(女流詩人)들의 시(詩)를 보면 사대부(士大夫)집 아낙네들의 노래에는 어째 그런지 일부러 감정(感情)을 눌러버리고 점잖은체 꾸민 감(感)이 있습니다. 그리고 소실(小室)과 시기(詩妓)의 것에는 조금도 감정(感情)을 거짓한 흔적이 없으니, 만일 「사무사(思無邪)」가 옳은 말씀이라면 이 점(點)에서 아낙네들의 노래는 낙제(落第)외다. 그리고 소실(小室)이니 시기(詩妓)니 하는 이들의 것이 도리어 급제(及第)니 대단히 재미있는 대조(對照)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기는 그중에도 난설헌(蘭雪軒) 같은 예외(例外)의 분도 없지는 아니하외다. 그러나 전체(全體)로의 그들을 본다 하면 누구나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질 것이외다. 저 소위(所謂) 사대부(士大夫)집 아낙네들의 시(詩)란 거의 고전(古典)에서 이런 구절(句節) 저런 사전(事典) 같은 것을 가져다가 노래라고 얽어 놓지 아니하면 대구(對句)같은 것이나 얌전히 하여 색책(塞責)을 한 관(觀)이 있어, 정말로 자기의 성정(性情)을 그대로 여실(如實)하게 쏟아 놓은 것은 적은상하외다. 게다가 무슨 원인(原因)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들의 시(詩)는 극(極)히 적으니 이것은 아마 남의 웃음이나 사지 아니할까 하는 생각에선가 보외다. 여류시인(女流詩人)들의 시가(詩歌)에 대(對)하여 좀더 자세히 이야기하는 것이 나의 책임(責任)일상 하외다, 마는 아직은 그럴 필요(必要)가 없는 듯싶어서 실물(實物)만을 내어놓으며 실물(實物)이 이러하니 마음대로 구경하소서 하는 태도(態度)로 만족(滿足)코저 합니다. 흥(興)으로 읽다가 재미있는 것이면 모두 다 적었기 때문에 절구(絶句) 이외(以外)의 율(律)이나 장시(長詩)도 적지 아니하나 절구(絶句)만을 모아서 출세(出世)시킨 뒤에는 그것들도 한 권(卷) 모아볼까 하였습니다. 마는 지금(只今) 형편(形便)으로는 대단히 어려울상싶습니다. × 역시(譯詩)에 대(對)한 나의 태도(態度)는 여러 번 이야기하였기 때문에 두 번 다시 말하고저 하지 아니하였으나 우연(偶然)히 소성(小星) 현상윤(玄相允) 형(兄)과 만나서 이야기 끝에 이 역시(譯詩)를 보인 적이 있었습니다. 「이건 자네 것이지, 어디 원시(原詩)의 번역인가?」 하면서 소성(小星)은 만족(滿足)지 않다는 의사(意思)를 표시(表示)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로 보면 어찌할 수 없는 일이외다. 원시(原詩)의 뜻이나 따다가 다시 만들어 놓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 나의 번역방법(飜譯方法)이외다. 하지 못할 것을 한다는 것은 오직 창작(創作)으로밖에 달리 길이 없지 아니합니까. 이 역시집(譯詩集)에는 더구나 같은 시(詩) 하나를 두 가지 형식(形式)으로까지 만들어 놓았으매 한가한 사람의 부질없는 짓이라고 할지는 모를망정, 나딴은 첫번 역(譯)에서는 될 수 있는 대로 원시(原詩)를 그대로 옮기려고 하였고 둘째인 시조(時調)로는 가장 자유(自由)로운 태도(態度)를 취(取)하자는 의사(意思)에서외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만치 나의 뜻한 바에 지어바림이 없는지, 역자(譯者)인 내 자신(自身)으로서는 무엇이라고 명언(明言)하기 어렵습니다. 그러하여 이에 대(對)하여는 읽으시는 여러분의 평(評)에 맡길 따름이외다. 그리고 가다가다 번역이 잘못된 것도 있을 것이외다. 이에 대(對)하여는 여러분의 호의(好意)로의 교시(敎示)를 기다립니다. 소화(昭和) 십칠년(十七年) 구월(九月) 계동(桂洞)서 역자(譯者)

주석

꽃다발 김억이 조선 여류시인들의 한시를 우리말로 옮겨 엮은 역시집(譯詩集)의 제목. 본 글은 그 책의 머리말(권두사)이다.

만독(慢讀) 느긋하게, 한가로이 읽음.

유주(遺珠) 남겨진 구슬. 빠뜨려져 전해지는 뛰어난 시문(詩文)을 비유한다.

사화집(詞華集) 여러 사람의 빼어난 시문을 가려 뽑아 엮은 책. 시선집(詩選集).

소실(小室) 첩(妾). 여기서는 첩 신분의 여류시인을 가리킨다.

시기(詩妓) 시를 잘 짓는 기생.

사무사(思無邪)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로, 시의 정신이 ‘생각에 거짓됨이 없음’을 뜻한다.

난설헌(蘭雪軒)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 뛰어난 한시를 남겼다.

소성 현상윤(小星 玄相允) 현상윤(1893~?). 호는 소성. 문인·교육자로 김억의 벗이다. 뒷날 고려대 초대 총장을 지냈다.

색책(塞責) 책임이나 맡은 일을 겨우 면할 만큼만 함. 마지못해 형식만 갖춤.

소화(昭和) 십칠년 일본 연호 쇼와 17년, 곧 1942년.

계동(桂洞) 서울 종로구의 동네 이름. 김억이 이 글을 쓴 곳이다.

심상·해설

여름날 뭉게구름이 떠가는 하늘 아래, 옛 여류시인들의 한시를 한 장 한 장 들추며 마음에 드는 구절을 공책에 옮겨 적던 즐거움에서 한 권의 역시집이 태어난 내력을 담담히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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