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천왕봉에서
인간(人間)에 발 부리고 하늘 위에 머리 두어,
아침 해 저녁달을 금은(金銀) 한 쌍 공만 여겨
번갈아 두 편 손끝에 주건 받건 하더라.
돌아봐 백두(白頭)러니 내다보매 한라(漢拏)로다,
천리(千里)에 마주보며 높은 자랑 서로 할 제,
셋 사이 오고가는 말 천풍(天風)이라 하더라.
조선(朝鮮) 지지자료(地誌資料)를 거(據)하여 조선(朝鮮) 오악(五嶽)이라고 할 명산(名山)[高山]의 표고(標高)를 보이건대
백두산(白頭山) 2744米 (9055尺)
낭림산(狼林山) 2014米 (6646尺)
한라산(漢拏山) 1950米 (6435尺)
지리산(智異山) 1915米 (6320尺)
금강산(金剛山) 1638米 (5894尺)
어머니 내 어머니 아우를수록 큰 어머니,
다숩한 품에 들어 더욱 느낄 깊은 사랑,
떠돌아 몸 얼린 일이 새로 뉘쳐집네다.
조선인(朝鮮人)의 고신앙(古信仰)에는 천(天)을 생주(生主)로 알고 산(山)을 천문(天門)으로 아는 일면(一面)이 있어 역중(域中)의 고산상봉(高山上峰)을 생명의 본원(本源)으로 숭앙(崇仰)하고 이러한 산악(山岳)을 ‘밝’이라 ‘닭’이라 ‘살’이라 일컬었다. 또 그 인격화(人格化)한 신(神)을 성모(聖母)라 왕대부인(王大夫人)이라 노고(老姑)라 하여 그곳에 배향(配享)하니 이러한 산악(山岳)을 ‘어머니말’이라고 불렀다. 지리산(智異山)은 남방(南方)에 있는 모악(母岳) 중(中)의 모악(母岳)으로 시방까지도 속칭(俗稱)에 ‘어머니’ 산(山)이라 하는 버릇이 남아 있다.
주석
천왕봉(天王峰) 지리산의 최고봉(1915m). 예부터 어머니 산의 으뜸 봉우리로 여겨졌다.
발 부리고 발을 딛고 버티어. '발 붙이고'와 통하는 옛 표현.
아우를수록 감싸 안을수록, 아우를수록. '아우르다'는 여럿을 한데 품음을 이른다.
다숩한 따뜻한. '다습다'의 관형형.
뉘쳐집네다 뉘우쳐집니다. '뉘우치다'의 옛 형태.
오악(五嶽) 나라를 대표하는 다섯 명산. 여기서는 백두·낭림·한라·지리·금강을 든다.
어머니말 어머니 산을 이르는 옛말. 산을 생명의 근원이자 어머니로 숭앙하던 고신앙에서 나왔다.
심상·해설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아침 해와 저녁달을 공처럼 받아 넘기고, 멀리 백두와 한라가 마주 서서 하늘 바람으로 대화하는 웅대한 환상 속에 어머니 산의 품을 느끼는 장면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