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나비
시키지 않은 일이 서둘러 하고 싶기에 난로에 싱싱한
물푸레 같어 지피고 등피 호 호 닦어 끼우어
심지 튀기니 불꽃이 새록 돋다 미리 떼고 걸고
보니 칼렌다 이튿날 날짜가 미리 붉다 이제 차츰
밟고 넘을 다람쥐 등솔기같이 구부레 벋어나갈 연봉
산맥길 위에 아슬한 가을 하늘이여 초침 소리 유달리
뚝닥거리는 낙엽 벗은 산장 밤 창유리까지에 구름이
드뉘니 후 두 두 두 낙수 짓는 소리 크기 손바닥만한
어인 나비가 따악 붙어 들여다 본다 가엾어라 열리지
않는 창 주먹쥐어 징징 치니 날을 기식도 없이
네 벽이 도로혀 날개와 떤다 해발 오천척 우에 떠도는
한조각 비맞은 환상 호흡하노라 서툴리 붙어 있는
이 자재화 한폭은 활 활 불피여 담기여 있는 이상스런
계절이 몹시 부러웁다 날개가 찢여진 채 검은
눈을 잔나비처럼 뜨지나 않을가 무섭어라 구름이 다시
유리에 바위처럼 부서지며 별도 휩쓸려 내려가 산
아래 어늰 마을 우에 총총 하뇨 백화 숲의 부옇게
어정거리는 절덩 부유스름하기 황혼 같은 밤.
주석
등피(燈皮) 남포등(석유등)의 불꽃을 감싸는 유리 덮개.
칼렌다 영어 calendar. 달력.
연봉(連峰) 죽 잇닿아 있는 산봉우리.
자재화(自在畵) 스스로 움직이며 살아 있는 그림. 유리창에 붙은 나비를 살아 있는 한 폭의 그림에 빗댄 표현.
잔나비 원숭이의 옛말.
백화(白樺) 자작나무.
절덩 '절벽'의 방언적 표기.
심상·해설
낙엽 진 산장의 밤, 난롯불을 피운 유리창에 손바닥만 한 나비가 딱 붙어 들여다보고, 해발 오천 척 구름과 별이 부서지는—고립된 산중의 환상적이고 서늘한 밤 풍경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