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카페, 프란스
옮겨다 심은 종려나무 밑에
빛 두루 슨 장명등,
카페, 프란스에 가자.
이놈은 루바쉬카
또 한놈은 보헤미안 넥타이
뻣적 마른 놈이 앞장을 섰다.
밤비는 뱀눈처럼 가는데
페이브멘트에 흐느끼는 불빛
카페, 프란스에 가자.
이 놈의 머리는 빗두른 능금
또 한놈의 심장은 벌레 먹은 장미
제비처럼 젖은 놈이 뛰어 간다.
*
(옹 패롵 서방 ! 꿋 이브닝!)
(꿋 이브닝!)(이 친구는 어떠하시오!)
울금향 아가씨는 이 밤에도
경사 커-틴 밑에서 조시는구료!
나는 자작의 아들도 아무것도 아니란다.
남달리 손이 희어서 슬프구나!
나는 나라도 집도 없단다
대리석 테이블에 닿는 내 뺌이 슬프구나!
오오, 이국종 강아지야
내 발을 빨어다오.
내 발을 빨어다오.
주석
장명등(長明燈) 밤새 불을 켜 두는 등. 여기서는 거리의 가로등.
루바쉬카 러시아 남자들이 입던 헐렁한 윗옷(rubashka). 당시 지식인·예술가의 차림을 상징한다.
보헤미안 넥타이 예술가풍의 자유분방한 차림을 상징하는 넓고 느슨한 넥타이.
페이브멘트 포장된 길, 인도(pavement).
옹 패롵 서방 프랑스어 감탄사 '오(O)'에 영어 'parrot(앵무새)'을 붙인 말장난. 가게의 앵무새를 부르는 익살.
꿋 이브닝 영어 인사 'Good evening(안녕하세요, 저녁 인사)'의 표기.
울금향(鬱金香) 튤립의 한자 이름. 여기서는 카페의 여급(아가씨)을 가리킨다.
경사(輕紗) 커-틴 얇고 가벼운 비단으로 된 커튼.
자작(子爵) 유럽 귀족의 작위 중 하나. 신분 높은 집안의 아들이 아님을 빗댄다.
이국종(異國種) 다른 나라에서 들여온 종자, 곧 외국 품종의 개.
심상·해설
뱀눈처럼 가는 밤비가 내리는 거리, 루바슈카와 보헤미안 넥타이 차림의 젊은이들이 이국풍 카페로 흘러들고, 나라도 집도 없이 손만 희어 슬픈 식민지 청년이 차가운 대리석 탁자에 뺨을 대고 강아지에게 발을 핥아 달라 청하는 비애가 짙게 깔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