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난초
난초(蘭草)닢은
차라리 수묵색.
난초(蘭草)닢에
엷은 안개와 꿈이 오다.
난초(蘭草)닢은
한밤에 여는 담은 입술이 있다.
난초(蘭草)닢은
별빛에 눈떴다 돌아 눕다.
난초(蘭草)닢은
드러난 팔구비를 어쨔지 못한다.
난초(蘭草)닢에
적은 바람이 오다.
난초(蘭草)닢은
칩다.
주석
수묵색(水墨色) 먹으로 그린 듯한 빛깔. 짙은 청록에 검은 기운이 도는 난초 잎의 빛을 이른다.
팔구비 팔굽이. 여기서는 휘어 드러난 난초 잎의 곡선을 사람의 팔에 빗댄 표현.
칩다 '춥다'의 옛 표기.
심상·해설
수묵빛 난초 잎이 한밤 별빛 아래 다문 입술처럼 깨었다 돌아눕고, 작은 바람에 가만히 떨며 추워하는—난초를 정인(情人)처럼 그려낸 절제되고 섬세한 정물의 정취가 감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