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당나귀
장돌뱅이 김첨지가 노는 날은
늙은 당나귀도 덩달아 쉬었다.
오늘도 새벽부터 비가 왔다.
쉬는 날이면 당나귀는 더 배가 고팠다.
배가 고파 쓰러진 채 당나귀는 꿈을 꿨다.
대문이 있는 집 마룻판 마구에서
구수한 콩죽밥을 실컷 먹고
안장은 금빛, 고삐는 비단
목에는 새로 만든 방울을 달고
하늘로 훨훨 날아가는 꿈이었다
주석
장돌뱅이 장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장수를 낮춰 이르는 말.
김첨지 '첨지(僉知)'는 본래 벼슬 이름이나, 나이 든 평민 남자를 낮추거나 친근히 부르던 호칭. 여기서는 떠돌이 장수.
마구 마구간. 말이나 당나귀를 매어 두는 곳.
심상·해설
비 오는 날 굶주린 채 쓰러진 늙은 당나귀가 따뜻한 마구간과 비단 고삐, 하늘을 나는 꿈을 꾸는 모습에서 고단한 삶과 헛된 소망이 겹쳐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