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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1920년대

나무

정지용 · 1920년대
얼골이 바로 푸른 한울을 우러렀기에 발이 항시 검은 흙을 향하기 욕되지 않도다. 곡식알이 거꾸로 떨어저도 싹은 반듯이 우로! 어느 모양으로 심기여젔더뇨? 이상스런 나무 나의 몸이여! 오오 알맞는 위치(位置)! 좋은 우아래! 아담의 슬픈 유산(遺産)도 그대로 받었노라. 나의 적은 연륜(年輪)으로 이스라엘의 이천년(二千年)을 헤였노라. 나의 존재(存在)는 우주(宇宙)의 한낱 초조(焦燥)한 오점(汚點)이었도다. 목마른 사슴이 샘을 찾어 입을 잠그듯이 이제 그리스도의 못박히신 발의 성혈(聖血)에 이마를 적시며- 오오! 신약(新約)의 태양(太陽)을 한아름 안다.

주석

아담의 슬픈 유산(遺産) 구약 창세기에서 아담이 죄로 인해 후손에게 물려준 원죄(原罪)와 죽음. 그리스도교의 원죄 개념.

이스라엘의 이천년(二千年) 구약시대 이래 구원을 기다려 온 긴 세월. 작은 나무의 나이테에 인류 구원사를 견준다.

성혈(聖血) 거룩한 피.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흘린 피로, 구원과 속죄를 상징한다.

신약(新約)의 태양(太陽) 신약성경이 전하는 구원의 빛, 곧 그리스도. 구약의 기다림에 대비되는 새 언약의 광명을 뜻한다.

목마른 사슴이 샘을 찾어 구약 시편 42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는다'의 변용.

심상·해설

하늘을 우러러 위로만 자라는 한 그루 나무에 자신을 빗대어, 원죄의 흙을 딛고도 신약의 태양을 한 아름 끌어안는 신앙적 각성과 구원의 갈망이 장엄하게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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