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병적 계절
기러기 제비가 서로 엇갈림이 보기에 이리도 서운가
귀뚜라미 떨어진 나뭇잎을 부여잡고 긴 밤을 새―네.
가을은 애달픈 목숨이 나뉘어질까 울 시절인가 보다.
가없는 생각 깜 모를 꿈이 그만 하나 둘 잦아지려는가
홀아비같이 헤매는 바람 떼가 한 배 가득 굽이치네.
가을은 구슬픈 마음이 앓다 못해 날뛸 시절인가 보다.
하늘을 보아라 야윈 구름이 떠돌아 다니네.
땅 위를 보아라 젊은 조선이 떠돌아 다니네.
주석
엇갈림 기러기는 가을에 오고 제비는 떠나가, 두 철새가 서로 오가며 어긋나는 계절의 풍경을 가리킨다.
깜 모를 '까닭 모를'의 옛 표현. 영문을 알 수 없는.
젊은 조선 식민지 현실 속에서 정처 없이 떠도는 조선의 젊은 세대를 떠도는 구름에 빗댄 표현이다.
심상·해설
철새가 엇갈리고 귀뚜라미가 우는 병든 가을밤, 야윈 구름이 하늘을 떠돌듯 갈 곳 없는 젊은 조선이 땅 위를 정처 없이 헤맨다. 식민지의 우울이 가을 풍경에 짙게 배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