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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해협
1920년대

다시 해협

정지용 · 1920년대
정오(正午) 가까운 해협(海峽) 백묵(白墨) 흔적(痕跡)이 적력(的歷)한 원주(圓周)! 마스트 끝에 붉은기(旗)가 하늘 보다 곱다. 감람(甘藍) 포기 포기 솟아 오르듯 무성(茂盛)한 물이랑이어! 반마(斑馬)같이 해구(海狗) 같이 어여쁜 섬들이 달려오건만 일일(一一)히 만져주지 않고 지나가다. * 해협(海峽)이 물거울 쓰러지듯 휘뚝 하였다. 해협(海峽)은 엎질러지지 않었다. 지구(地球)우로 기여가는 것이 이다지도 호수운 것이냐! 외진곳 지날제 기적(汽笛)은 무서워서 운다. 당나귀처럼 처량(凄凉)하구나. 해협(海峽)의 칠월(七月) 해ㅅ살은 달빛 보담 시원타. 화통(火筒)옆 사닥다리에 나란히 제주도(濟州島) 사투리 하는이와 아주 친했다. 수물 한 살 적 첫 항로(航路)에 연애(戀愛) 보담 담배를 먼저 배웠다.

주석

적력(的歷)한 또렷하고 분명한. 뱃길이 백묵으로 그은 듯 또렷한 원을 그린다는 뜻.

원주(圓周) 원의 둘레. 둥근 지구 위를 도는 항로의 곡선을 가리킨다.

감람(甘藍) 양배추. 포기진 물이랑을 양배추 포기에 빗댄 표현.

반마(斑馬) 얼룩말.

해구(海狗) 물개.

호수운 '통쾌하다, 시원하고 후련하다'는 뜻의 옛말 '호숩다'에서 온 말.

화통(火筒) 기선의 굴뚝, 연통.

심상·해설

한낮의 해협을 가르는 기선, 붉은 기와 무성한 물이랑, 얼룩말·물개 같은 섬들이 달려오고, 스물한 살 첫 항해의 호기로움과 풋풋함이 칠월 햇살처럼 환하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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