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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봄 아침
1920년대

이른봄 아침

정지용 · 1920년대
귀에 설은 새소리가 새여 들어와 참한 은시계로 자근자근 얻어맞은듯, 마음이 이일 저일 보살필 일로 갈러저, 수은방울처럼 동글 동글 나동그라저, 춥기는 하고 진정 일어나기 싫어라. * 쥐나 한마리 훔켜 잡을 듯이 미다지를 살포-시 열고 보노니 사루마다 바람 으론 오호! 치워라. 마른 새삼넝쿨 새이 새이로 빠알간 산새새끼가 물레ㅅ북 드나들듯. * 새새끼 와도 언어수작을 능히 할가 싶어라. 날카롭고도 보드라운 마음씨가 파다거리여. 새새끼와 내가 하는 에스페란토는 휘파람이라. 새새끼야, 한종일 날어가지 말고 울어나 다오, 오늘 아침에는 나이 어린 코끼리처럼 외로워라. * 산봉오리-저쪽으로 돌린 푸로우필- 페랑이꽃 빛으로 볼그레 하다, 씩 씩 뽑아 올라간, 밋밋 하게 깎어 세운 대리석 기둥 인듯, 간ㅅ뎅이 같은 해가 익을거리는 아침 하늘을 일심으로 떠바치고 섰다, 봄ㅅ바람이 허리띄처럼 휘이 감돌아서서 사알랑 사알랑 날러 오노니, 새새끼도 포르르 포르르 불려 왔구나.

주석

사루마다 일본어 사루마타(猿股)에서 온 말로, 짧은 속바지·팬티를 가리킴.

새삼넝쿨 새삼덩굴. 다른 식물에 기생하는 덩굴식물.

에스페란토 1887년 자멘호프가 만든 국제 공용어. 여기서는 말이 통하지 않는 새와 통하는 '공통의 언어'로 휘파람을 빗댐.

푸로우필 프로필(profile). 옆얼굴, 옆모습.

페랑이꽃 패랭이꽃. 분홍빛이 도는 들꽃.

심상·해설

이른 봄 아침 낯선 새소리에 잠을 깨어, 마른 덩굴 사이를 드나드는 빨간 산새 새끼와 휘파람으로 말을 건네는 화자의 외로움과, 패랭이꽃 빛으로 물든 산봉우리가 해를 떠받친 청신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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