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5일밤 산보
초여드레 넘으며
밤마다도 달빛은 밝아오는데,
이제 스무날까지는 밤마다 밤마다도
들에 거닐기 좋으리라 바로 지금이로치.
논두렁 좁은 길 어둑어둑하지만
우거진 아카시아 숲 아래 배어오는 향기(香氣)는
건드리는 바람에 비껴라 풀숲 사이로,
밤일하는 농부(農夫)의 담뱃불 깜빡일 때.
희슴푸레 보이는 것 달빛에 번듯이며,
저 너머 넘어 편(便) 치달아 뻗은 고개로
네 활개 치면서
젊은 길손 지나는구나.
돌아가는 좁은 길은 끝조차 없는데,
가다가는 멈추고 우뚝 서서
넋 없이 풀벌레 소리를 들어라,
푸른 하늘 아래의 밤은 희고 밝은데.
아주 밤은 점점 깊느냐,
인간(人間)보다도 달빛이 더 가까워오누나
외로운 몸에는 지어버린 세상(世上)이여,
기대(企待)나 있느냐 희망(希望)이나 있느냐 이제조차.
쉬어 가자 더욱 이 청(靑)풀판이 좋구나,
푸릇스름한 무늬여 얼른 달빛에
번득이는 이슬방울은 벌써도 채었구나,
그저 그저 이대로 거닐다가 들어가나 잠자자.
주석
초여드레 음력 초여드렛날. 달이 점점 차오르기 시작하는 무렵이다.
스무날 음력 스무날. 보름을 지나 달이 다시 기우는 시기로, 그때까지 달밤이 환함을 말한다.
희슴푸레 희끄무레. 빛이 흐릿하게 희게 보이는 모양.
기대(企待)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기다림. 오늘날의 '기대(期待)'와 같은 뜻.
심상·해설
달빛 환한 여름밤 들길을 홀로 거닐며 아카시아 향기와 풀벌레 소리에 잠기는데, 사람보다 달빛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외로운 산책의 정경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