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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1920년대

비

정지용 · 1920년대
돌에 그늘이 차고, 따로 몰리는 소소리 바람. 앞 섰거니 하야 꼬리 치날리여 세우고, 죵죵 다리 까칠한 산새 걸음걸이. 여울 지여 수척한 흰 물살, 갈갈히 손가락 펴고, 멎은듯 새삼 듣는 빗낯 붉은 닢 닢 소란히 밟고 간다.

주석

소소리 바람 이른 봄에 살 속으로 스며드는 듯 차고 매서운 회오리바람.

빗낯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양, 또는 빗방울 그 자체. '비의 낯'이라는 표현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가리킨다.

심상·해설

골짜기 돌 위로 차게 깔리는 그늘과, 종종걸음 치는 산새와 갈래진 흰 물살, 그리고 붉은 잎을 소란히 밟으며 듣는 빗방울이 한 폭의 절제된 산수화처럼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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