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청령
건드리면손끝에묻을듯이빨간봉선화
너울너울하마날아오를듯하얀봉선화
그리고어느틈엔가남으로고개를돌리는듯한일편단심의해바라기―
이런꽃으로꾸며졌다는고흐의무덤은참얼마나아름다우리까.
산은한낮에바라보아도
비에젖은듯보얗습니다.
포플러는마을의지표(指標)와도같이
실바람에도그뽑은듯헌출한키를
포물선으로굽혀가면서진공과같이마알간대기속에서
원경을축소하고있습니다.
몸과나래도가벼운듯이잠자리가활동입니다.
헌데그것은과연날고있는걸까요.
흡사진공속에서라도날을법한데
혹누가눈에보이지않는줄을이리저리당기는것이나아니겠나요.
주석
청령(蜻蛉) 잠자리를 가리키는 한자어.
봉선화(鳳仙花) 봉숭아. 붉은 꽃잎으로 손톱을 물들이는 풍습으로 친숙한 꽃.
일편단심(一片丹心) 한 조각의 붉은 마음. 변치 않는 진실하고 굳은 마음.
고흐(Vincent van Gogh) 네덜란드 출신의 후기 인상파 화가(1853~1890). 해바라기 연작으로 유명하다.
헌출한 '헌칠한'의 옛 표기. 키가 보기 좋게 늘씬한 모양.
심상·해설
비 갠 듯 뽀얀 산을 배경으로 포플러가 실바람에 휘고, 진공 속에 매달린 듯 보이지 않는 줄에 당겨지는 잠자리의 정지된 비행이 맑고 신비롭게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