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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1930년대

호수

오장환 · 1930년대
호수에는 사색 가지의 물고기들이 살기도 한다. 차디찬 슬픔이 생겨나오는 말―간 새암 푸른 사슴이 적시고 간 입 자국이 남기어 있다. 멀리 산간에서는 시냇물들이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어오고 어둑―한 숲길은 고대의 창연한 그늘이 잠겨 있어 나 어린 구름들이 한나절 호수 가에 노닐다 간다. 저물기 쉬운 하룻날은 풀뿌리와 징게미의 물내음새를 풍기우며 거무른 황혼 속에 잠기어버리고 내 마음, 좁은 영토 안에 나는 어스름 거무러지는 추억을 더듬어보노라. 오호 저녁바람은 가슴에 차다. 어두운 장벽 속에는 지저분하게 그어 논 소년기의 낙서가 있고, 큐―피드의 화살 맞았던 검은 심장은 찢어진 대로 겉날리었다. 가는 비와 오는 바람에 흐르는 구름들이여! 너는 어느 곳에 어젯날을 만나보리오 야윈 그림자를 연못에 적시며 낡은 눈물을 어제와 같이 흘려보기에 너는 하많은 청춘의 날을 가랑잎처럼 날려 보내었나니 오― 나는 싸느랗게 언 체온기를 겨드랑 속에 지니었도다.

주석

사색(四色) 네 가지 빛깔을 뜻한다.

새암 샘의 옛말.

창연(蒼然)하다 빛깔이 푸르스름하거나, 물건이 오래되어 예스러운 빛이 그윽함을 이른다.

징게미 민물에 사는 새우의 한 종류인 징거미새우를 가리킨다.

장벽(臟壁) 내장의 벽이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화자의 가슴속 내면을 비유한다.

큐피드(Cupid) 로마 신화에서 사랑의 화살을 쏘는 사랑의 신으로, 사랑에 빠짐을 상징한다.

심상·해설

푸른 사슴이 다녀간 맑은 호숫가에 황혼이 잠겨 들고,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식어 버린 청춘의 추억을 차가운 체온계처럼 더듬는 고즈넉한 장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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