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나의 길
- 3.1기념의 날을 맞으며
기미년 만세 때
나도 소리높이 만세를 부르고 싶었다.
아니 숭내라도 내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 전해에 났기 때문에
어린애 본능으로 울기만 하였다.
여기서 시작한 것이 나의 울음이다.
광주학생사건 때
나도 두 가슴을 헤치고 여러 사람을
따르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중등학교 입학시험에 미끄러져
그냥 시골구석에서 한문을 배울 때였다.
타고난 불운이 여기서 시작한 것이다.
그 뒤에 나는
동경에서 신문배달을 하였다.
그리하야 붉은 동무와
나날이 싸우면서도
그 친구 말리는 붉은 시를 썼다.
그러나
이때도 늦은 때였다.
벌써 옳은 생각도 한철의 유행되는 옷감과 같이
철이 지났다.
그래서 내가 우니까
그때엔 모두 다 귀를 기울였다.
여기서 시작한 것이 나의 울음이다.
8월 15일
그 울음이 내처 따러왔다.
빛나야 할 앞날을 위하야
모든 것은
나에게 지난 일을 돌이키게 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울음뿐이다.
몇 사람 귀기울이는 데에 팔리어
나는 울음을 일삼어왔다.
그리하야 나는 또 늦었다.
나의 갈 길,
우리들의 가는 길,
그것이 무엇인 줄도 안다.
그러나 어떻게? 하는 물음에 나의 대답은 또 늦었다.
아 나에게 조금만치의 성실이 있다면
내 등에 마소와 같이 길마를 지우라.
먼저 가는 동무들이여.
밝고 밝은 언행의 채찍으로
마소와 같은 나의 걸음을 빠르게 하라.
주석
3·1기념의 날 1919년 3월 1일 일어난 3·1운동을 기리는 날.
기미년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해.
광주학생사건 1929년 광주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번진 항일 학생운동.
붉은 동무·붉은 시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동무와 그 경향의 시. '붉은'은 좌익·사회주의를 가리킴.
길마 짐을 싣기 위해 소나 말의 등에 얹는 안장.
마소 말과 소를 아울러 이르는 말.
심상·해설
역사의 고비마다 한발씩 늦어 울기만 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마소처럼 등에 길마를 지고서라도 앞선 동무들을 따라가겠다는 부끄러움 섞인 다짐이 절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