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모촌
초라한 지붕 썩어 가는 추녀 위엔 박 한 통이 쇠었다.
밤 서리 차게 내려앉는 밤, 싱싱하던 넝쿨이 사그라 붙던 밤, 지붕 밑 양주는 밤새워 싸웠다.
박이 딴딴히 굳고 나뭇잎새 우수수 떨어지던 날, 양주는 새 바가지 뀌어 들고 초라한 지붕, 썩어 가는 추녀가 덮인 움막을 작별하였다.
주석
모촌(暮村) 저물녘의 마을. 혹은 쇠락해 가는 가난한 마을이라는 뜻.
추녀 처마의 네 귀에 있는 큰 서까래, 또는 처마 끝.
양주(兩主) 바깥주인과 안주인, 곧 부부를 함께 이르는 말.
쇠었다 박 따위가 너무 익어 단단해지고 쓸모를 잃었다는 뜻.
뀌어 들고 '꿰어 들고'의 옛 표기. 바가지에 끈을 꿰어 들었다는 뜻.
움막 땅을 파고 거적 따위로 덮어 임시로 지은 작고 허름한 집.
심상·해설
서리 내리는 늦가을 밤, 썩은 추녀 위 쇤 박처럼 메마른 가난 속에서 밤새 다투던 노부부가 끝내 새 바가지만 꿰어 들고 움막을 떠나는 쓸쓸한 농촌 풍경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