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길손의 노래
입동철 깊은 밤을 눈이 나린다. 이어 날린다.
못 견디게 외로웁던 마음조차
차차로이 물러앉는 고운 밤이여!
석유불 섬벅이는 객창 안에서
이 해 접어 처음으로 나리는 눈에
람프의 유리를 다시 닦는다.
사랑하고 싶은 사람 그리움일래
연하여 생각나는
날 사랑하던 지난날의 모든 사람들
그리운 이야
이 밤 또한 너를 생각는 조용한 즐거움에서
나는 면면한 기쁨과 적요에 잠기려노라.
모든 것은 나무램도 서글픔도 또한 아니나
스스로 막혀오는 가슴을 풀고
싸늘한 미닫이 조용히 열면
낯선 집 봉당에는 약탕관이 끓는 내음새
이 밤 따러
가신 이를 생각하옵네
가신 이를 상고하옵네.
주석
입동철 입동(立冬) 무렵, 곧 겨울이 시작되는 철.
객창(客窓) 나그네가 묵는 집의 창. 객지에서의 외로운 처지를 뜻함.
봉당(封堂) 안방과 건넌방 사이의 마루를 놓지 않은 흙바닥 공간.
약탕관(藥湯罐) 한약을 달이는 데 쓰는 자루 달린 질그릇.
적요(寂寥) 적적하고 고요함.
상고(詳考)하다 꼼꼼히 따져 깊이 헤아리다.
심상·해설
첫눈이 소리 없이 내리는 깊은 겨울밤, 객지의 방에서 램프 유리를 닦으며 떠나간 이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는 나그네의 쓸쓸한 정경이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