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거울
거울 속에는 소리가 없소
저렇게까지 조용한 세상은 참 없을 것이오
거울 속에도 내게 귀가 있소
내 말을 못 알아듣는 딱한 귀가 두 개나 있소
거울 속의 나는 왼손잡이요
내 악수(握手)를 받을 줄 모르는―악수(握手)를 모르는 왼손잡이요
거울 때문에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만져 보지를 못하는구료마는
거울 아니었던들 내가 어찌 거울 속의 나를 만나 보기만이라도 했겠소
나는 지금(至今) 거울을 안 가졌소마는 거울 속에는 늘 거울 속의 내가 있소
잘은 모르지만 외로된 사업(事業)에 골몰할 게요
거울 속의 나는 참 나와는 반대(反對)요마는 또 꽤 닮았소
나는 거울 속의 나를 근심하고 진찰(診察)할 수 없으니 퍽 섭섭하오
주석
거울 이상이 1933년 발표한 대표작. 거울 속 자아와 현실의 자아가 단절·대칭되는 모습을 통해 분열된 근대적 자의식을 그렸다.
외로된 사업(事業) 외따로 떨어져 홀로 하는 일. 거울 속 자아가 현실과 단절된 채 몰두하는 고립된 행위를 뜻한다.
진찰(診察) 병을 살펴봄. 거울 속 또 다른 나를 들여다보고 돌볼 수 없다는 단절감을 의학 용어로 표현했다.
심상·해설
소리 없이 고요한 거울 속에 또 하나의 내가 왼손잡이로 마주 서 있다. 만질 수도 악수할 수도 없는 또 다른 자아를 들여다보는, 분열된 자의식의 서늘한 자화상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