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머리에
여기에 모은 것은 팔월 십오일 이후부터 지금까지 나의 쓴
시의 전부이다. 처음부터 서문 같은 것은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일기처럼 날자를 박어가며 써나온 이 시편, 이속에 불려진
노래가 모든 것을 해답할 것이다.
대체로 전일 내가 쓴 시들이 어그린 큰 욕심과 자기를 떠난
사람을 구한 것이라 하면, 여기 이 시편 속에 있는 것은
어떻게 하면 자신에 충실하고 어떻게 하면 이 현실에 똑바를 수
있는가를 찾기 위하야 다만 시밖에는 쓸 줄 모르는 내가, 울부짖고
느끼며 혹은 크게 결의를 맹세하려든 그날 그날을 조목 조목
일기로 적은 것이 이 시편들이다.
거듭 말할 필요도 없다. 나의 시속에 아직도 의심하고 아직도
서러하는, 아직도 굳건하지 못한 점이 있으면 내 시를
사랑하는 이들은 두말없이 나의 온 몸에 채찍을 날리라. 그러나
다만 보잘것없는 나의 성질이 이러한 찌꺽이를 버리지
못한 것이라 하면 그대들도 나의 타고난 이 불능에 대하여, 또
이 똑바로 보지 않으면 안될 현실에 대하야 따듯한 이해를 가지라.
옳은 말이나 많은 말이란 아무 때이고 남에게 들림을 받는
것임을 이 중에도 뼈아프게 도리킨다. 언론자유, 출판자유,
이렇게 휘번들한 증거 밑에도 용기 없는 사람은 자유를 갖지 못한다.
이로 인하야 나는 「지도자」와 「너는 보았느냐」의
두 작품을 비굴한 신문기자 때문에 발표치 못할 번하엿다.
그러나 훌륭한 우리의 선배와 동무들은 이것을 세상에 물어주었다.
그리고 또 하나 어이없는 일은 「연합군입성환영의 노래」의
수난인데, 이것을 그 당시 방송국에서 갖다가 어느 편의
의도인지는 모르나 그들이 작자의 의사를 무시하고 제 마음대로
「연합군」이란 문구를 「미국군」이라고 전부 고차 방송한
일이다.
내가 이 시집을 하로바삐 내어 세상에 묻고저 함은, 이
어려운 세월을 나는 이렇게 살어왔고, 또 이렇게 살랴고 한다고
외치고 싶음이었으나, 또 한편으로는 우리의 문화□□을
좀먹는 무리들의 악의를 벗어나 진실로 속여지지 않은 내 의사를
이렇게 도시할 수 있음을 그들에게 알리기도 위함이다.
일구사육. 삼. 일이일
서울대학부속의원입원실에서
저자
주석
8월 15일 1945년 광복일. 이 시집이 광복 직후의 작품 모음임을 가리킴.
시편(詩篇) 여러 편의 시. 시 작품들을 한데 묶어 이르는 말.
연합군 입성 환영의 노래 광복 후 진주한 연합군을 환영하기 위해 지은 작품. 방송에서 '미국군'으로 고쳐졌다 함.
휘번들한 번드르르한. 겉만 그럴듯하게 번지르르한.
도시(圖示)할 그림으로 보이듯 분명히 드러내 보일.
서울대학 부속의원 서울대학교 부속병원. 1946년 당시 오장환이 입원해 있던 곳.
심상·해설
병상에서 쓴 시집의 서문으로, 광복 이후 자신에게 충실하고 현실에 똑바로 서려 몸부림친 나날과 검열의 수난을 담담히 고백하는 시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