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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1930년대

역

오장환 · 1930년대
점잖은 장님은 검은 연경을 쓰고 대나무 지팡이를 때때거렸다. 고쿠라 양복을 입은 소년 장님은 밤늦게 처량한 퉁소 소리를 호로롱호로롱 골목 뒷전으로 울려주어서 단수 짚어보기를 단골로 하는 뚱뚱한 과부가 뒷문간으로 조용히 불러들였다.

주석

역(易) 점을 치는 일, 곧 역술·점술. 장님 점쟁이를 다룬 시의 제목.

연경(煙鏡) 빛을 가리려고 알을 검게 물들인 안경, 곧 색안경(선글라스).

고쿠라 양복 두껍고 질긴 무명천인 고쿠라(小倉) 직물로 지은 양복. 학생복·작업복으로 흔히 쓰였음.

단수 짚어보기 점을 쳐서 운수를 헤아려 보는 일. '단수'는 운수·사주를 가리킴.

심상·해설

검은 색안경에 대지팡이를 딱딱 짚는 장님 점쟁이와, 밤늦게 골목을 처량하게 울리는 소년의 퉁소 소리, 그 소리를 따라 뒷문으로 점쟁이를 불러들이는 과부의 모습에서 어둑한 뒷골목의 쓸쓸한 풍속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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