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눈이 내리느니
북국에는 날마다 밤마다 눈이 내리느니
회색 하늘 속으로 흰 눈이 퍼부을 때마다
눈 속에 파묻히는 하아얀 북조선이 보이느니.
가끔가다가 당나귀 울리는 눈보라가
막북강(漠北江) 건너로 굵은 모래를 쥐어다가
추위에 얼어 떠는 백의인(白衣人)의 귓불을 때리느니.
춥길래 멀리서 오신 손님을
부득이 만류도 못하느니,
봄이라고 개나리꽃 보러 온 손님을
눈 발구에 실어 곱게 남국에 돌려보내느니.
백웅(白熊)이 울고 북랑성(北狼星)이 눈 깜박일 때마다
제비 가는 곳 그리워하는 우리네는
서로 부둥켜 안고 적성(赤星)을 손가락질하며 얼음 벌에서 춤추느니.
모닥불에 비치는 이방인의 새파란 눈알을 보면서,
북국은 추워라, 이 추운 밤에도
강녘에는 밀수입 마차의 지나는 소리 들리느니,
얼음장 트는 소리에 쇠방울 소리 잠겨지면서.
오호, 흰 눈이 내리느니, 보오얀 흰 눈이
북새(北塞)로 가는 이사꾼 짐짝 위에
말없이 함박눈이 잘도 내리느니.
주석
막북강(漠北江) 사막 북쪽, 곧 아득히 먼 북방의 강. 막북은 고비 사막 이북을 가리키던 말로, 여기서는 만주 너머 먼 북쪽을 뜻한다.
백의인(白衣人) 흰옷을 즐겨 입던 우리 민족, 곧 한국인을 이르는 말.
발구 마소가 끌어 짐을 나르던 썰매. 눈길·얼음 위에서 쓴다. 원문 '발귀'.
백웅(白熊) 흰곰, 북극곰. 북쪽의 혹한을 상징한다.
북랑성(北狼星)·적성(赤星) 북랑성은 북쪽 하늘의 이리별(시리우스 계통), 적성은 붉게 빛나는 별. 추운 북녘의 밤하늘을 그린다.
북새(北塞) 북쪽 변방, 북쪽 국경 지대.
심상·해설
날마다 밤마다 함박눈이 퍼붓는 북국, 흰옷 입은 사람들이 얼음 벌판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추위에 떨며 북쪽 변방으로 떠나는 이삿짐 위로 눈이 소복이 쌓이는 처연한 설경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