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불지암
그밤 가득한산정기는 기척없이솟은 하얀달빛에 모다쓸리우고
한낮을 향미로우라 울리든 시내물소리마져 멀고그윽하여
중향의맑은돌에 맺은 금이슬 구을러흐트듯
아담한 꿈하나 여승의 호젔한품을 애끊이 사라젔느니
천년옛날 쫓기여간 신라의아들이냐 그빛은 청초한 수미산나리꽃
정녕 지름길 섯드른 흰옷입은 고흔소년이
흡사 그바다에서 이바다로 고요히 떠러지는 별살가치
옆산모롱이에 언듯 나타나 앞골시내로 삽분 사라지심
승은 아까워 못견듸는냥 희미해지는 꿈만 뒤쫓았으나
끝없는지라 돌여 밝는날의 남모를 귀한보람을 품었을뿐
토끼라 사슴만 뛰여보여도 반듯이 긔려지는 사나이 지났었느니
고흔연의 거동이 있음즉한 맑고트인날 해는 기우는제
승의보람은 이루웠느냐 가엾어라 미목청수한 젊은선비
앞시내물 모이는 새파란 쏘에 몸을 던지시니라
주석
불지암 절 또는 암자의 이름으로 보이는 제목.
중향(衆香) 불교에서 온갖 향기가 가득한 청정한 세계(중향국)를 이르는 말.
수미산(須彌山) 불교의 우주관에서 세계의 중심에 솟아 있다는 거대한 산.
별살 별빛이 뻗치는 가닥, 별빛 줄기.
승(僧) 여기서는 앞에 나온 '여승'을 가리킨다.
연(輦) 임금이나 귀인이 타던 가마.
미목청수(眉目淸秀) 눈썹과 눈, 곧 얼굴 생김새가 맑고 빼어남.
소 물이 깊게 고여 있는 웅덩이('沼').
심상·해설
달빛에 산 정기가 쓸리는 밤, 흰옷 입은 고운 소년의 환영이 산모퉁이에 언뜻 나타났다 사라지고, 끝내 젊은 선비가 푸른 소에 몸을 던지는 애절하고 신비로운 장면이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