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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군취천명
1940-1950년대

권군취천명

김동환 · 1940-1950년대
一 그대는 이십 대 우리는 사십 대 부자 이대(父子二代) 서로 나란히 서서 전장에 내닫세 다만 오늘은 그대 선진(先陣) 되고 내일날 우리 뒤따르리 안 나서면 무얼 하나 못 쳐서 오륙십 살면 무얼 하나 차라리 한두 해라도 번듯하게 살아버리지. 번듯하게 사는 길이란―― 제 목숨 나라에 바쳐, 나라가 그 생사 맡아주심일레 그러면 살 제는 후하게 따뜻하게 똑같게 하여 주시고 죽을 젠 그 자리 거룩하고 높으게 꾸며주시네 지금, 조국은 전쟁하는 때 살고 죽고를 더욱더 군국(君國)에 바칠 때일세 이인석(李仁錫) 군은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았던가 그도 병(兵) 되어 생사를 나라에 바치지 않았던들 지금쯤은 충청도 두메의 이름 없는 농군이 되어 베옷에 조밥에 한평생 묻혀 지내었겠지 웬걸 지사(知事), 군수(郡守)가 그 무덤에 절하겠나 웬걸, 폐백(幣帛)과 훈장(勳章)이 그 제상(祭床)에 내렸겠나, 二 그대 안 나가면 어떻게 되나――, 변호사를 하겠지, 교사나 중역(重役)이 되겠지 그러나 한편 남대문과 종로에 폭탄이 떨어지고 그대의 처자(妻子)는 미영병(米英兵)에 모욕을 당하면 어떻게 하리 이 일은 파리 대학생과 이태리 학도들이 먼저 그 모본(模本)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조국을 나아가 막지 않는 자엔 천벌이 내리느니라!』 또 그대가 안 나가고 이불을 쓰고 드러누울 수는 있겠나, 명춘(明春)엔 동생 되는 중학생 수만이 징병으로 나서고 보국대(報國隊)로 좌우친화(左右親和)가 괭이 들고 자꾸 나서고 소년들까지 징용공(徵用工)으로 공장에 나갈 적에 양심 있고 의리 있는 그대, 나가지 말란들 그리될까 어서 하루 급히 나서라, 벗이여 학우(學友)여! 오오 조선동포의 대표여 꽃이여 오오, 제국(帝國)의 수재(秀才)여, 빛(光)이여 오오, 폐하(陛下)의 고굉(股肱)이여, 나라의 기둥인 그대여 부명(父命)을 받들고 어서 나서라! 군명(君命)을 받들고 어서 나서라! 때는 급하느니, 천명(天命)을 받들고 어서어서 나서시라 ―특별지원병에 보내는 일시인(一詩人)의 편지―

주석

권군취천명(勸君就天命) '그대에게 천명에 나아가기를 권한다'는 뜻의 한문 제목. 젊은이에게 지원병 입대를 권유하는 내용.

이인석(李仁錫) 1939년 중일전쟁에 일본군 지원병으로 참전했다 전사한 조선인. 당시 친일 선전에서 '지원병의 모범'으로 널리 미화됨.

미영(米英) 미국(米國)과 영국(英國). 태평양전쟁기 일본의 적국을 한자로 표기한 것.

보국대(報國隊) 일제 말기 노동력 동원을 위해 조직된 근로 봉사 조직.

고굉(股肱) 다리와 팔이라는 뜻으로, 임금이 가장 믿고 의지하는 신하를 비유하는 말.

특별지원병 일제가 1938년 시행한 육군특별지원병 제도. 조선인을 일본군에 동원하기 위한 제도로, 이 시는 그 입대를 독려하는 친일 선전시이다.

심상·해설

아버지와 아들 두 세대가 나란히 전쟁터로 내닫기를 권하며, 이인석의 무덤과 훈장을 본보기로 들어 젊은이에게 지원병 입대를 격정적으로 독려하는 선동의 장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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