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漢江)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鍾路)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頭蓋骨)은 깨어져 산산(散散)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 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鼓)을 만들어 둘러메고는
여러분의 행렬(行列)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주석
그날 조국이 해방되는 광복의 날을 가리킨다. 이 시는 일제강점기 저항시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삼각산(三角山) 서울 북쪽 북한산의 옛 이름. 백운대·인수봉·만경대의 세 봉우리에서 유래했다. 한강과 더불어 서울, 곧 조국을 상징한다.
인경(人磬) 조선시대에 통행금지를 알리려고 밤마다 치던 큰 종. 종로 보신각의 종을 이른다. '인정(人定)'에서 온 말이다.
육조(六曹) 조선시대 여섯 중앙 관청(이·호·예·병·형·공조). '육조 앞 넓은 길'은 지금의 광화문 앞 세종로 일대로, 나라의 중심 거리를 뜻한다.
하량이면 '하기만 하면', '해 주기만 한다면'의 옛 표현.
심상·해설
광복의 그날이 오면 삼각산이 춤추고 한강이 뒤집힐 만큼 기뻐, 제 두개골로 종을 울리고 제 가죽을 벗겨 북을 만들어 앞장서겠다는, 목숨을 건 환희의 절규가 솟구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