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1910년대
강가로 가자
얼음이 다 녹고 진달래 잎이 푸르러도,
강물은 그 모양은커녕 숨소리도 안 들려준다.
제법 어른답게 왜버들가지가 장마철을 가리키는데,
빗발은 오락가락 실없게만 구니 언제 대하를 만나볼까?
그러나 어느덧 창밖에 용구새가 골창이 난지 십여 일,
함석 홈통이 병사(病舍) 앞 좁은 마당에 뒹구는 소리가 요란하다.
나는 침대를 일어나 발돋움을 하고 들창을 열었다.
답답어라, 고성 같은 백씨기념관(白氏紀念館)만이 비에 젖어 묵묵(黙黙)하다.
오늘도 파도를 이루고 거품을 내뿜으며 대동강은 흐르겠지?
일찍이 고무의 아이들이 낡은 것을 향하여 내닫든 그대와 같이
흐르는 강물이여! 나는 너를 부(富)보다 사랑한다.
‘우리들의 슬픔’을 싣고 대해로 달음질하는 네 위대한 범람(氾濫)을!
얼마나 나는 너를 보고 싶었고 그리웠는가?
그러나 오늘도 너는 모르는 척 저 뒤에 숨어 었다, 누운 나를 비웃으며,
정말 나는 다시 이곳에서 일지를 못할 것인가?
무거운 생각과 깊은 병의 아픔이 너무나 무겁다.
오오, 만일 내가 눈을 비비고 저 문을 박차고 않으면,
정말 강물은 책 속에 진리와 같이 우리들의 생활로부터
인연 없이 흐를지도 모르리라.
누구나 역사의 거센 물가로 다가서지 않으면,
영원히 진리의 방랑자로 죽어버릴지 누가 알 것일까?
청년의 누가 과연 이것을 참겠는가? 두말 말고 강가로 가자,
넓고 자유로운 바다로 소리쳐 흘러가는 저 강가로!
주석
왜버들 키가 작고 가지가 늘어지는 버드나무의 한 종류.
대하(大河) 큰 강.
용구새 용마루의 기와 골('용마름/용구새')을 이르는 말. 지붕 꼭대기.
병사(病舍) 병자가 머무는 집이나 방. 곧 병실.
백씨기념관(白氏紀念館) 평양에 있던 기념 건물로 추정되는 고유명사.
대동강 평양을 가로질러 흐르는 큰 강.
범람(氾濫) 물이 넘쳐흐름. 여기서는 강의 거대한 흐름을 긍정적으로 이른 말.
심상·해설
병상에 누운 이가 들창 너머 비 내리는 마당을 보며, 슬픔을 싣고 바다로 내달리는 강물을 그리워한다. 갇힌 몸과 흐르고픈 의지의 대비가 마지막 '강가로 가자'의 외침으로 터져 나온다.
낭독 지시
Style: 병상의 답답함을 낮게 깔다가 '강가로 가자'에서 점점 끓어올라 외치듯, 마지막 행은 터뜨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