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낭인의 봄
휘둘니 산을 넘고,
굽어진 물을 건너,
푸른 풀 붉은 꽃에
길 걷기 시름이여.
잎 누른 시닥나무,
철 이른 푸른 버들,
해 벌써 석양인데
불슷는 바람이여.
골짜기 이는 연기
뫼 틈에 잠기는데,
산마루 도는 손의
슬지는 그림자여.
산길가의 외론 주막,
에이그 쓸쓸한데.
먼저 든 짐장사의
곤(困)한 말 한 소리여.
지는 해 그림지니,
오늘은 어디까지,
어둔 뒤 아무 데나,
가다가 묵으리라.
풀숲에 물김 뜨고,
달빛에 새 놀래는,
고운 밤 야반(夜半)에도
내 사람 생각이여.
주석
낭인(浪人) 정처 없이 떠도는 사람, 방랑자.
휘둘니 ‘휘둘린’. 이리저리 굽이쳐 휘감긴 모양.
시닥나무 단풍나뭇과의 낙엽 활엽 교목. 산지에 자란다.
불슷는 ‘불어 스치는’의 옛 표현. 바람이 불어 스쳐 가는 모양.
뫼 ‘산(山)’을 뜻하는 옛말.
손 길손, 나그네.
슬지는 ‘스러지는(사라지는)’의 옛 표현.
야반(夜半) 한밤중.
심상·해설
산 넘고 물 건너 떠도는 나그네가 석양 바람과 외딴 주막, 골짜기 연기 속을 지나 달빛 어린 한밤에도 두고 온 사람을 그리는 방랑의 봄 풍경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