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가을
물은 희고 길구나, 하늘보다도.
구름은 붉구나, 해보다도.
서럽다, 높아 가는 긴 들 끝에
나는 떠돌며 울며 생각한다, 그대를.
그늘 깊이 오르는 발 앞으로
끝없이 나아가는 길은 앞으로.
키 높은 나무 아래로, 물 마을은
성긋한 가지가지 새로 떠오른다.
그 누가 온다고 한 언약(言約)도 없건마는!
기다려 볼 사람도 없건마는!
나는 오히려 못 물가를 싸고 떠돈다.
그 못물로는 놀이 잦을 때.
주석
언약(言約) 말로 한 약속.
성긋한 성긴. 사이가 촘촘하지 않고 듬성듬성한 모양.
놀 노을. 해 질 무렵 하늘이 붉게 물드는 현상.
심상·해설
하늘보다 희게 뻗은 물과 해보다 붉은 구름, 노을 잦아드는 못가를 기다릴 이도 없이 울며 맴도는 가을의 서러운 방황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