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바닷가의 밤
한줌만 가느다란 좋은 허리는
품 안에 차츰차츰 졸아들 때는
지새는 겨울 새벽 춥게 든 잠이
어렴풋 깨일 때다 둘도 가 같이
사랑의 말로 못할 깊은 불안에
또 한 끝 후줄근한 옅은 몽상에.
바람은 깨우친다 때에 바닷가
무서운 물소리는 잦 일어온다.
엉킨 여덟 팔다리 걷어채우며
산뜩히 서려오는 머리칼이여.
사랑은 달콤하지 쓰고도 맵지.
햇가는 쓸쓸하고 밤은 어둡지.
한밤의 만난 우리 다만 천 가지
너는 꿈의 어머니 나는 아버지.
일시 만났다 나뉘어 가는
곳 없는 몸 되기도 서로 같거든
아아아 허술럽다 삶은 말로.
아, 이봐 그만 일자 창이 희었다
슬픈 날은 도적같이 달려들었다.
주석
지새는 밤을 꼬박 새워 날이 밝아 오는. ‘지새다’의 활용형.
산뜩히 / 선뜩이 갑자기 서늘하고 차가운 느낌이 드는 모양.
햇가 살아가는 나날, 세월. ‘해(年)+가(가장자리)’로 ‘살아가는 날’을 뜻한다.
허술럽다 ‘허술하다’의 변형. 빈틈 있고 미덥지 못하며 덧없다는 뜻.
곳 없는 몸 정처 없는 몸, 머물 곳 없는 신세.
심상·해설
겨울 바닷가 새벽, 서로 안은 채 깨어 가는 두 사람의 사랑이 거센 물소리와 서늘한 불안에 흔들리고, 창이 희어 오며 이별 같은 슬픈 날이 도둑처럼 닥쳐오는 장면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