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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오야
1930년대

십오야

김기림 · 1930년대
산호빛 갑옷을 입은 달은 푸른 하눌의 얼음판을 지처서 에메랄드의 군도를 휘둘르며 바람을 몰고간다. 강들은 두터운 유리창을 굳게 잠그고 오늘밤은 일체 면회사절이다. 시인(詩人)과 아가씨의 눈물이 성가신가봐. 새벽을 꾸짖는 사형수인 늙은 세계는 밤이 붓는 침묵의 술잔을 기울이며 찢어진 하누님의 심장에서 새는 히푸른 액체를 마시며 비청거린다. 술취한 달빛이 오후 열한시의 개천가의 얼음판에 미끄러져 자빠진다. 와르르 터지는 바람의 웃음소리.

주석

십오야(十五夜) 음력 보름날 밤. 둥근 보름달이 뜨는 밤.

군도(軍刀) 군인이 차는 긴 칼. 여기서는 에메랄드빛 칼로 달빛을 비유한 것.

지처서 '지치다'의 옛말로, 얼음판 위를 미끄러져 달린다는 뜻.

심상·해설

산호빛 갑옷을 입은 보름달이 얼어붙은 밤하늘을 미끄러지고, 술 취한 달빛이 개천가 얼음판에 자빠지자 바람이 와르르 웃는, 차고 환상적인 겨울 보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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