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내연인이여 가까이 오렴
내 연인이여! 좀더 가까이 오렴!
지금은 애수哀愁의 가을, 가을도 이미 길었나니.
음흑陰黑의 밤 무너진 옛 성 너머로
우수수 북역北域 바람이 우리를 덮어 온다.
나비 날개처럼 앙상한 네 적삼
얼마나 차냐? 왜 떠느냐? 오오 애무서워라.
내 연인이여! 좀더 가까이 오렴!
지금은 조락凋落의 가을, 때는 우리를 기다리지 않나니
한여름 영화榮華를 자랑하던 나뭇잎도
어느듯 낙엽이 되어 저 성城둑 밑에 훌쩍거린다.
잎사귀 같은 우리 인생 한번 바람에 흩어 가면
어느 강산 또 언제 만나리오
좀더 가까이 좀더 가까이 오렴!
한 발자취 그대를 옆에 두고도 내 마음 먼 듯해 미치겠노라.
전신全身의 피란 피 열화熱火같이 가슴에 올라
오오 이 밤 새기 전 나는 타고야 말리니.
까—만 네 눈이 무엇을 생각느냐?
좀더 가까이 좀더 가까이 오렴!
오늘 밤엔 이상하게도 마을 개 하나 짖들 않는다.
어두운 이 성둑 길을 행여나 누가 걸어오랴
성 위에 한없이 짙어가는 밤—이 한 밤은 오직 우리의 전유專有오니.
네 팔에 내 목을 안아라. 우리는 두 청춘, 청춘아! 제발 길어 다오.
주석
음흑(陰黑) 음산하고 캄캄함.
북역(北域) 북쪽 지역. 여기서는 북쪽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가리킴.
조락(凋落) 초목의 잎이 시들어 떨어짐. 인생의 쇠락을 비유.
영화(榮華) 몸이 귀하게 되어 빛나고 화려함.
열화(熱火) 뜨거운 불. 격렬한 정열을 비유.
전유(專有) 혼자서 독차지하여 가짐.
심상·해설
무너진 옛 성과 떨어지는 낙엽 사이로 차가운 가을바람이 부는 깊은 밤, 앙상한 연인을 끌어안으며 타오르는 정열로 청춘이 더디 가기를 애원하는 장면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