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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
1920년대

피리

정지용 · 1920년대
자네는 인어를 잡아 아씨를 삼을 수 있나? 달이 이리 창백한 밤엔 따뜻한 바다속에 여행도 하려니. 자네는 유리 같은 유령이 되어 뼈만 앙사하게 보일 수 있나? 달이 이리 창백한 밤엔 풍선을 잡어타고 화분 날리는 하늘로 둥 둥 떠오르기도 하려니. 아모도 없는 나무 그늘 속에서 피리와 단둘이 이야기 하노니.

주석

아씨 여기서는 아내, 또는 사랑하는 여인을 정답게 이르는 말.

앙사하게 '앙상하게'의 옛 표기. 살이 없이 뼈만 남은 모양.

화분(花粉) 꽃가루. 하늘에 흩날리는 꽃가루의 이미지.

하노니 '하노라', '하고 있노라'를 뜻하는 옛 말투.

심상·해설

창백한 달밤, 인어를 아내로 삼거나 유리 유령이 되어 풍선을 타고 꽃가루 날리는 하늘로 떠오르는 환상을 자네에게 묻다가, 결국 아무도 없는 나무 그늘에서 피리와 단둘이 이야기하는 외로운 공상의 정취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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