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1950년대
나의뮤-즈
아주 헐벗은 나의 뮤―즈는
한번도 기어 싶은 날이 없어
사뭇 밤만을 왕자(王者)처럼 누려왔소
아무것도 없는 주제언만도
모든 것이 제 것인 듯 버티는 멋이야
그냥 인드라의 영토(領土)를 날아도 다닌다오
고향은 어데라 물어도 말은 않지만
처음은 정녕 북해안(北海岸) 매운 바람 속에 자라
대곤(大鯤)을 타고 다녔단 것이 일생(一生)의 자랑이죠
계집을 사랑커든 수염이 너무 주체스럽다도
취(醉)하면 행랑 뒷골목을 돌아서 다니며
복보다 크고 흰 귀를 자주 망토로 가리오
그러나 나와는 몇 천겁(千劫) 동안이나
바로 비취(翡翠)가 녹아나는 듯한 돌샘가에
향연(饗宴)이 벌어지면 부르는 노래란 목청이 외곬수요
밤도 진하고 닭소리 들릴 때면
그만 그는 별 계단(階段)을 성큼성큼 올라가고
나는 촛불도 꺼져 백합(百合)꽃밭에 옷깃이 젖도록 잤소
주석
뮤즈(Muse) 그리스 신화에서 시·음악·예술을 관장하는 여신. 여기서는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시혼(詩魂)을 의인화한 존재다.
인드라(Indra) 인도 신화의 천신(天神)으로, 그 영토는 광대무변한 하늘 세계를 뜻한다. 뮤즈가 거니는 자유롭고 드넓은 상상의 영역을 가리킨다.
대곤(大鯤) 『장자』에 나오는 북녘 바다의 거대한 물고기 곤(鯤). 변하여 붕새가 된다고 하며, 웅대한 기상과 초월적 비상을 상징한다.
북해안(北海岸) 북쪽 바닷가. 『장자』의 곤이 살던 북명(北溟)을 떠올리게 하는, 춥고 거친 시혼의 출생지로 그려진다.
천겁(千劫) 불교에서 헤아릴 수 없이 긴 시간 단위인 겁(劫)이 천 번. 아득히 오랜 세월을 뜻한다.
향연(饗宴) 성대하게 베푸는 잔치. 여기서는 돌샘 가에서 벌어지는 시와 노래의 잔치를 이른다.
심상·해설
헐벗었으나 밤을 왕처럼 누리는 시혼이 큰 물고기 곤을 타고 하늘을 날고, 비취 녹는 돌샘 가의 잔치 끝에 별 계단을 올라가는 환상적 장면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