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파라솔
연잎에서 연잎내가 나듯이
그는 연잎 냄새가 난다.
해협을 넘어 옮겨다 심어도
푸르리라, 해협이 푸르듯이.
불시로 상기되는 뺨이
성이 가시다, 꽃이 스스로 괴롭듯.
눈물을 오래 어리우지 않는다.
윤전기 앞에서 천사처럼 바쁘다.
붉은 장미 한 가지 고르기를 평생 삼가리,
대개 흰 나리꽃으로 선사한다.
원래 벅찬 호수에 날러들었던 것이라
어차피 헤기는 헤여 나간다.
학예회 마지막 무대에서
자폭스런 백조인양 흥청거렸다.
부끄럽기도 하나 잘 먹는다
끔직한 비-프스테이크 같은 것도!
오피스의 피로에
태엽처럼 풀려왔다.
램프에 갓을 씌우자
도어를 안으로 잠갔다.
기도와 수면의 내용을 알 길이 없다.
포효하는 검은 밤, 그는 조란처럼 희다.
구기여지는 것 젖는 것이
아주 싫다.
파라솔같이 채곡 접히기만 하는 것은
언제든지 파라솔같이 펴기 위하야-
주석
파라솔 양산(parasol). 평소엔 접혀 있다가 필요할 때 활짝 펴지는 양산처럼, 자신을 단정히 접어 두는 신여성의 자태를 빗댄 제목.
성이 가시다 성가시다·짜증스럽다. 까닭 없이 달아오르는 뺨이 거북하다는 뜻.
흰 나리꽃 흰 백합. 붉은 장미(정열)를 삼가고 순결한 백합을 건네는 절제된 성품을 나타낸다.
헤기는 헤여 나간다 헤엄치기는 헤엄쳐 나간다. 벅찬 세상(호수)에 던져졌어도 어떻게든 헤쳐 나간다는 뜻.
조란(鳥卵) 새의 알. 검은 밤 속에서도 새알처럼 희고 깨끗한 모습을 비유했다.
심상·해설
연잎 냄새가 나는 한 신여성이 낮에는 윤전기 앞에서 천사처럼 바쁘고 밤에는 문을 잠그고 새알처럼 희게 잠드는, 구겨짐과 젖음을 싫어하며 파라솔처럼 단정히 접혔다 펴지는 절제된 자태가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