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진달래
한 골에서 비를 보고 한 골에서 바람을 보다 한 골에
그늘 딴 골에 양지 따로 따로 갈어 밟다 무지개
해ㅅ살에 빗걸린 골 산벌떼 두름박 지어 위잉
위잉 두르는 골 잡목 수풀 누릇 붉읏 어우러진 속에
감초혀 낮잠 듭신 칡범 냄새 가장자리를 돌아 어마
어마 기여 살어 나온 골 상봉에 올라 별보다 깨끗한
돌을 드니 백화 가지 우에 하도 푸른 하늘...
포르르 풀매... 온 산중 홍엽이 수런 수런거린다
아래ㅅ절 불 켜지 않은 장방에 들어 목침을 달쿠어 발바닥
꽈리를 슴슴 지지며 그제사 범의 욕을 그놈 저놈 하고
이내 누웠다 바로 머리 맡에 물소리 흘리며
어늬 한 곬으로 빠져 나가다가 난데없는 철 아닌 진달래
꽃사태를 만나 나는 만신을 붉히고 서다.
주석
빗걸린 비스듬히 걸린.
두름박 지어 두레박처럼 둥글게 무리를 이루어. 산벌 떼가 동그랗게 모여 도는 모양.
감초혀 '감추어져'의 옛 표기.
칡범 몸에 칡덩굴 무늬 같은 줄이 있는 범, 즉 호랑이.
상봉(上峰) 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 꼭대기.
백화(白樺) 자작나무. 껍질이 하얀 나무.
홍엽(紅葉) 붉게 물든 잎, 단풍.
장방(長房) 여러 사람이 들 수 있는 길쭉하고 큰 방.
꼬아리/꽈리 여기서는 발바닥에 박힌 티눈을 이르는 말.
만신(滿身) 온몸.
심상·해설
비와 바람, 그늘과 양지가 골짜기마다 갈리는 깊은 산을 헤매다 칡범 냄새 나는 곳을 가까스로 빠져나오고, 산꼭대기 푸른 하늘 아래 절 큰 방에 누웠다가 철 아닌 진달래 꽃사태를 만나 온몸을 붉히는 산행의 황홀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