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1950년대
곤충구제
자벌레
숲속에 홀로 누워 내 보았다 유심히도
치(寸) 올라 자(尺) 나리되 쉬지 않는 자벌레를
나무야 오르든 마든 그 뜻 못내 부러라.
딱정벌레
노란 등 까만 반점(斑點) 미채(迷彩)일시 분명하다
꽃빛과 잎그늘에 아롱아롱 섞일러니
재바른 새 눈에 띄어 온데 간데 없더라.
반딧불
칠같이 검은 밤에 켰다 껐다 작은 등(燈)불
풀잎에 걸리일까 요정(妖精)의 길 밝힘인가
그 불빛 따라만 가면 시름 놓일까 하노라.
말똥구리
여름날 촌(村)길 우에 그악쟁이 말똥구리
잠신들 제 일 쉬움 어느 뉘 보았는다
이름이 점잖지 않다 낮보지는 못하리.
불나비
어둠에 쫓긴 나비 불빛 찾어 날아들어
깃만을 태우던가 몸마저 사루우네
어두면 어두운대로 살아보면 어떠리.
오줌싸개
머리는 적은 것이 허리춤은 기단 것이
제 무엇 믿기관대 앞발 세고 일어선다
바퀴야 저의 위엄(威嚴)쯤 안 적이나 있으랴
베짱이
풀빛 베짱이 풀잎에 매달리어
찌르르 울을제에 난데없는 양미(涼味) 돈다
처마 끝 발 들이니 시원 더욱 하고나
문각씨(門閣民)
누구의 죽은 넋이 문각씨(門閣民)로 태어나서
추야장(秋夜長) 긴 긴 밤에 남의 심사(心思) 흔드는다
밤중만 도드락 소래에 잠 못이뤄 하노라
소금쟁이
물우에 성큼성큼 장각 활보(長脚 濶步) 소금쟁이
진종일 물에 살되 물 한방울 적실소냐
어즈버 도세(渡世)하는 법 네게 밸까 하노라.
개구리
혼자냥 지당(池塘)가를 저두 침사(低頭 沈思) 거닐러니
무삼것 뛰어들어 경수 무풍(鏡水 無風) 소래 내네
어이타 경망한 개구리 나의 꿈을 깨는다.
개구리 저 개구리 수륙 자재(水陸 自在) 부러우나
붙은 발 굽은 등에 복배(腹背) 빛깔 다른데다
솟긴 눈 이저리 굴려 믿긴 어려 하노라.
─「文章[문장]」, 1941. 4
주석
치(寸)·자(尺) 옛 길이 단위. 한 치는 약 3cm, 한 자(열 치)는 약 30cm. 자벌레가 몸을 폈다 굽히며 조금씩 기어가는 모습을 길이 단위로 표현했다.
미채(迷彩) 주위와 비슷하게 보이도록 한 위장(僞裝) 무늬.
그악쟁이 몹시 억척스럽고 끈질긴 존재를 이르는 말.
오줌싸개 방아깨비 따위를 가리키던 옛 이름. 잡으면 다리를 들썩이는 곤충을 아이들이 부르던 별칭이다.
양미(涼味) 서늘하고 시원한 기운이나 맛.
문각씨(門閣民) 귀뚜라미를 이르는 옛말. 가을밤 문가에서 우는 곤충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추야장(秋夜長) 기나긴 가을밤. 한시(漢詩) 투의 표현이다.
도세(渡世) 세상을 살아 나감. 처세(處世)와 같은 뜻.
어즈버 '아아'에 해당하는 옛 감탄사. 시조에서 자주 쓰였다.
지당(池塘) 못, 연못.
저두 침사(低頭 沈思) 고개를 숙이고 깊은 생각에 잠김.
경수 무풍(鏡水 無風) 바람 한 점 없어 거울처럼 잔잔한 물.
수륙 자재(水陸 自在) 물과 뭍을 자유로이 오가며 어디서나 거리낌 없음.
심상·해설
숲과 들과 연못가의 작은 벌레들을 하나하나 시조에 담은 연작. 자벌레의 부지런함, 반딧불의 작은 등불, 가을밤 귀뚜라미 소리에서 시인은 곤충의 삶을 빌려 처세와 운명을 가만히 되짚는다.